역사속 오늘

스페인-포르투갈, 세계를 분할한 ‘토르데시야스 조약’ 체결

유럽인의 시야가 아직 지중해에 머물러 있던 15세기 중엽, 먼저 미지의 땅과 바다로 향한 것은 포르투갈이었고 그 중심에는 엔리케 왕자가 있었다. 엔리케는 대서양 연안의 마데이라제도와 아조레스제도를 전진기지로 삼아 세네갈, 베르데곶, 기니 해안, 시에라리온 등 아프리카 연안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게다가 1481년 6월 교황 식스투스 4세가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에 있는 카나리아제도 남쪽의 모든 땅은 포르투갈 땅’이라는 것을 교서로 인정하고, 1488년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발견하면서 아프리카 서쪽 연안은 포르투갈의 절대 우위 지역이 되었다. 그 무렵, 훗날 해양대국이 될 영국은 프랑스와 백년전쟁에 정신이 없었고, 스페인은 소왕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스페인 통일의 주역’ 이사벨라 여왕이 등장하면서 식민사업을 둘러싸고 포르투갈과 스페인 간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양국은 소유자가 없었던 카나리아제도에서도 충돌했으나 포르투갈의 패배로 카나리아는 스페인 최초의 해외 영토가 되어 오늘날까지 스페인령이다.

스페인을 통일한 1492년, 여왕이 후원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함으로써 식민지 분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양국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콜럼버스(스페인)는 신대륙을 ‘미개척지 인도’라고 생각했고, 포르투갈은 ‘자국령 마데이라제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했으니 중재가 필요했다. 포르투갈의 주앙 2세가 교황 알렉산데르 6세한테 중재를 요청하자, 교황은 1493년 5월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에 위치한 베르데곶(현재의 카포베르데 공화국)에서 서쪽으로 100리그(480㎞) 지점에 남북 직선의 ‘교황 자오선’을 그어 서쪽은 스페인령, 동쪽은 포르투갈령으로 삼게 했다.

그러자 주앙 2세는 교황의 결정에 불만을 품고 1년 후 스페인에 새로운 경계를 요구했다. 1494년 6월 7일 스페인 북부의 작은 도시 토르데시야스에서 체결된 ‘토르데시야스 조약(Treaty of Tordesillas)’이 이때의 협상 결과물이다. 베르데곶에서 100리그였던 경계선을 370리그(1780㎞)로 늘리는 이 조약에 대해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반대했으나 후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조약을 승인(1506년)함으로써 두 해양 강대국끼리의 세계 분할선은 일방적으로 확정되었다. 경계선은 대략 브라질의 상파울루를 지나는 경도 46도37분쯤에 해당된다. 이후 1500년 포르투갈의 카브랄이 브라질을 발견하고, 1531년 포르투갈의 첫 정착민이 브라질에 도착하면서 브라질은 오늘날 남미국가 중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국가가 되었다.

 

☞태평양을 나눈 ‘사라고사 조약’

토르데시야스 조약은, 포르투갈이 주로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양·태평양으로 진출하고, 스페인이 서쪽 대서양으로 진출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포르투갈은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 캘리컷에 도착한 뒤 차츰차츰 태평양으로 나아갔고, 스페인은 대서양을 건넌 발보아가 1513년 유럽인 최초로 육지에서 태평양을 바라보고, 1519년 마젤란이 아메리카 남단을 돌아 태평양으로 진출했다. 이로써 양국은 태평양에서 또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 때는 아프리카에 대한 실체가 뚜렷하지 않았고, 인도양과 태평양은 아직 존재조차 알려져 있지 않아 태평양에도 경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양국이 태평양에서 만난 곳은 필리핀 동남쪽 몰루카제도 부근이었다. 포르투갈은 1512년 이곳을 자국령으로 삼았으나, 태평양을 거쳐 1521년에 괌과 필리핀에 닿은 마젤란이 괌, 필리핀과 함께 몰루카제도를 스페인령이라고 주장하면서 작게는 몰루카제도 크게는 태평양을 둘러싸고 다시 분쟁이 시작됐다.

양국은 1529년 4월 22일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중재로 스페인의 사라고사에서 다시 조약을 체결, 몰루카제도에서 동쪽으로 297.5리그(1리그는 4.8㎞)를 양국의 경계로 삼았다. 오늘날의 괌과 마리아나제도 부근에 해당되는 경도 145도 지점이다. 사라고사 조약(Treaty of Saragossa)에 따라 몰루카제도, 인도, 필리핀, 아프리카·인도양 일대의 항해와 통행권을 장악한 포르투갈은 동방무역에 더욱 힘을 기울였으나 점차 국력이 약해지면서 몰루카제도와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에 빼앗기고, 필리핀은 스페인의 펠리페 2세에 빼앗기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게다가 영국이 1588년 펠리페 2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신흥 해양강국으로 부상하면서 두 조약은 사실상 사문화되고 만다. 바야흐로 힘이 지배하는 세계 식민지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