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中 문화대혁명 첫 대자보 등장

1966년 5월 25일, 북경대 학생식당 벽에 부착된 문화대혁명기의 첫 대자보 제목은 “송석, 육평, 팽패운은 문화대혁명에서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였다. 송석은 북경시 당위원회 대학부 부장이고 육평은 북경대학장 겸 북경대 당서기였으며, 팽패운은 북경대 당부서기였다. 당시 상황에서 당 간부를 ‘반당 반사회주의자’로 비판한다는 것은 반당행위로 간주되어 사실상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대자보에는 북경대 여성강사 섭원재를 대표로 한 7명의 이름이 떡하니 적혀있었다. 대자보는 섭원재가 훗날 모택동의 비서가 된 강생의 처 조일구의 사주를 받아 작성한 것이었으나 당시에는 누구도 대자보의 배후에 모택동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섭원재는 당 간부들을 ‘군(君)’으로 지칭하며 이들이 모택동의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저간의 배경을 알 리 없는 육평 등이 그날 중 대학 구내에 대자보를 빽빽하게 붙이며 반격에 나설 때만 해도 섭원재는 곧 당의 배신자로 공격받아 위기에 처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6월 1일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섭원재의 대자보가 중앙인민방송국 뉴스를 통해 ‘전국 최초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대자보’로 평가받은 것이다.

다음날자 인민일보는 ‘환호를 보낸다’는 논평까지 곁들여 보도하고, 모택동은 “북경대학이라는 견고한 보루의 타파가 가능해졌다”며 대자보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육평과 팽패운은 곧 대학에서 추방되었다. 40여 명의 당 간부와 교사 등도 대학 내에서 몽둥이에 매달리는 굴욕을 당했다. 유소기가 조직한 공작조가 광란의 현장에 달려가 학대행위를 중지시키려 하자 홍위병들은 혁명을 억압한다며 반발했다. 섭원재는 문화대혁명 기간에 총아로 떠올랐으나 2년 뒤 모택동에게 버림받아 반혁명 죄목으로 8년간, 등소평 등장 후인 1980년 ‘모택동의 앞잡이’라는 죄명으로 다시 8년간을 복역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 역시 모택동의 음모에 놀아난 희생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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