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5월 19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거행된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기공식 현장.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붕대를 감은 채 나타나자 참석자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일부 참석자 얼굴에는 불길한 표정이 역력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기공식에 참석하기 전 황태자는 동방행을 기회 삼아 일본을 방문했다. 1854년 미국의 페리 제독에 의해 강제로 개항된 이래 ‘서양인’ ‘서양것’이라면 늘 경외감을 품어온 일본에, 러시아 황태자의 방문은 국가적 중대사건이었다.
5월 11일 황태자가 교토 부근의 시가현 청사를 벗어나고 있을 때였다. 황태자의 경호를 맡은 경찰 한 명이 다가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일본도로 황태자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다행히 칼날이 모자 테두리를 가르고 황태자의 뒷머리를 스친 덕에 황태자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범인 쓰다 산조는 “황태자가 천황을 예방하지 않고 유람이나 하는 것에 분노를 느껴 범행했다”고 자백했지만 그의 호기와는 달리 일본 열도는 두려움에 떨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러시아의 보복 때문이었다.
천황은 “범인을 처벌하라”고 지시하고 초·중·고 학생들은 병석에 누워있는 황태자에게 위문편지와 위문품을 보냈다. 답지된 위문전보만 1만 통이나 됐다. 어느 현에서는 ‘쓰다’ 성을 가진 주민의 성을 바꾸도록 하고, ‘산조’라는 이름은 신생아에게 일절 쓰지 못하도록 결의했다. 한 아낙네는 러시아 황제에게 사죄를 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해 하루아침에 열녀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오쓰지방에서 일어났다 해서 ‘오쓰 사건(大津事件)’으로 불린 이 사건의 불길한 징조는 일본보다 황태자 개인에게 더 큰 비극으로 닥쳐왔다. 1896년 니콜라이가 황제로 즉위하던 날에는 2000여 명이 압사하는 참변이 일어났고 결혼한 지 10년 만에 얻은 아들은 혈우병 환자였으며 1917년에는 러시아 혁명으로 그를 포함한 일가가 참살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