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할리데이 만큼 기구한 삶을 살았던 재즈 가수도 드물다. 44년 짧은 생은 가난, 학대, 강간, 이혼, 약물중독, 인종차별, 구속 등 숱한 고통들로 점철된 한많은 인생이었다. 대공황이 몰아친 1931년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16살 빌리 할리데이는 발길 닿는대로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할렘가의 어느 나이트클럽에 들렀다. 테스트로 부르게 된 그의 노래가 홀 안에 울려퍼지자 시끌법적하던 실내가 문득 조용해지더니 노래가 끝난 후까지도 정적이 한동안 계속됐다. 훗날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가수’가 될 빌리 할리데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할리데이는 곧 주급 18달러짜리 가수로 활동하다가 유명 음악 프로듀서의 눈에 띠어 1933년 첫번째 앨범을 냈고 이후 몇 년간은 생애 최고의 행복한 시기를 보냈다. 그러나 무대만 내려오면 그는 여전히 한 마리 검둥이일 뿐이었다. 지방순회 공연을 할 때는 정문이 아닌 부엌문 출입을 강요받고 공연이 끝나 단원들이 피곤에 지친 몸을 누일 때조차 잠잘 곳을 찾아 거리를 헤매야 했다. 솔로로 활동하던 1939년 초, 시인 루이스 앨런이 찾아와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s)’이라는 시 한편을 건네주었다. 시에서 과일은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채 눈이 튀어나오고 입이 비뚤어지도록 매질을 당해 온 몸이 피로 물든 흑인을 가리켰다. ‘이상한 과일’ 속의 흑인과 다를 바 없는 생을 살아온 할리데이는 시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동료가 곡을 붙여 만들어진 노래는 1939년 4월 20일 맨해튼의 한 스튜디오에서 녹음돼 그해 여름 음반으로 출시됐다. 자신의 삶을 빼다박은 시였기에 빌리는 감정의 폭발을 최대한 억제했다. 노래는 투쟁의 외침이 아니라 폭력에 체념하는 소리없는 흐느낌이었다. 1959년 7월 17일 차가운 병원 독방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 그의 침대머리에 걸린 진료 기록판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병명 : 마약중독 말기 증상, 치료방법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