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 벌였다가 구속

1982년 4월 공영토건이 어음사기를 당했다는 진정서가 검찰에 접수됐다. 사건을 내사한 검찰은 5월 4일 외환관리법 위반혐의로 이철희․장영자 부부를 구속했다. 재미교포에게서 40만 달러를 차용하고도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미국에 은닉했다는 혐의였다. 검찰이 그동안 관련 소문이 무성했는데도 진정서가 제출된 후에야 늑장수사를 하고 게다가 사기사건이 아니라 외환관리법 위반사건으로 애써 축소 발표하자 사람들의 관심이 이들 부부의 뒷배경에 쏠렸다. 이철희는 육사 2기로 중앙정보부 차장과 유정회 국회의원을 지낸 거물이었고, 장영자는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의 처제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심지어 “더 큰손은 청와대의 안주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이를 의식한 전두환 대통령이 5월 11일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검찰은 그제서야 재수사에 나서 5월 20일 사건 전모를 발표했다. 종합하면 장영자는 주로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들을 찾아다니며 남편 이철희의 경력을 이용해 현금을 빌려주는 대신 이들로부터 2~9배에 달하는 약속어음을 받아내고 이 어음을 할인해 또 다른 회사에 빌려주었다. 공영토건 등 6개 기업이 1981년 2월부터 1982년 4월까지 부부에게 발행해준 7111억 원의 어음가운데 이런 방식으로 사채시장에서 할인된 금액은 6404억 원이나 됐다.

공영토건은 빌린 현금의 9배나 되는 1279억 원의 약속어음을 제공하고, 태양금속은 현금을 한푼도 받지 않고 어음을 끊어주는 등 모든 게 의혹투성이였다. 게다가 6개 기업으로부터 편취한 1801억 원 가운데 460억 원의 사용처는 끝내 밝혀지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단군 이래 최대의 금융사기사건’이라는 말이 소문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청와대 배후설도 가라앉질 않았다. 이 사건으로 장영자의 형부 이규광을 포함해 은행장 등 30여 명이 구속됐다. 권력구조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옷을 벗고 안기부장이 물러났다. 5공 실세 허화평과 허삼수도 이때부터 몰락의 길을 걸었다. 포항제철의 뒤를 이어 2위였던 일신제강과 도급순위 8위였던 공영토건은 부도로 문을 닫았다.

이철희와 장영자는 법정 최고형인 15년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하다가 1991년과 1992년 각각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진위 여부는 알수 없으나 출소 후 부부는 “우리들은 정치적인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사건은 어음사취사건이 아니라 정치적 사건이고 자신들은 5공 권력의 희생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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