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잭 존슨이 흑인 최초로 세계 헤비급 복싱 챔피언이 되고, 1936년 제시 오언스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육상 4관왕에 올라 히틀러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도 백인이 보고 즐기는 스포츠에는 여전히 흑인의 진입을 가로막는 높은 장벽이 쳐 있었다. 벽은 지긋지긋한 2차대전이 끝나고 대중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194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허물어졌다. 1946년 NFL(미식축구)이 흑인선수를 받아들인 것을 시작으로 MLB(프로야구·1947년), PGA(골프·1948년), NBA(농구·1949년)가 흑인을 받아들이더니 1958년에는 NHL(아이스하키)까지 문호를 개방하면서 흑인 스포츠 시대가 만개했다.
1947년 4월 15일은 미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날이다. 장차 훗날 최초의 흑인선수, 최초의 흑인 신인왕, 최초의 흑인 MVP, 최초의 흑인 올스타로 이름을 떨칠 재키 로빈슨이 메이저리그 경기에 처음 출전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흑인들은 그들만의 ‘니그로리그’에서 야구경기를 해왔다. 로빈슨 역시 1944년 니그로리그의 캔자스시티 모나크에서 야구인생을 시작했으나 재능을 눈여겨본 브루클린 다저스의 구단주 브랜치 리키가 그를 끌어들이면서 메이저리그사에 길이 빛날 위대한 선수 자리를 예약할 수 있었다.
로빈슨은 경기보다 인종차별에 시달렸다. 욕을 하는 선수, 불공정하게 경기를 진행하는 심판, 원정경기 때는 숙소와 식사제공을 거부하는 호텔로 인해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로빈슨은 묵묵히 야구에만 전념, 데뷔 첫해에 타율 0.297, 홈런 12개, 도루 29개를 기록하며 그 해 처음 제정된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1956년 은퇴할 때까지 10년 동안 통산타율 0.311을 기록하고, 1949년에는 내셔널리그 MVP와 최고수위타자(0.342)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다저스는 그의 활약 덕에 10년간 6번이나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고 1955년에는 우승의 기쁨까지 맛보았다. 1972년에는 등번호 42번이 브루클린 다저스의 영구결번이 되더니 1997년에는 메이저리그 전구단이 등번호 42번을 영구결번으로 결정, 인종차별에 정면으로 맞선 그의 진정한 용기를 빛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