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나라 최초 태극기는 1882년 8월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철종의 사위 박영효가 일본행 배 위에서 태극기를 만들어 국기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통설이 바뀐 것은 최근이다. 박영효가 태극기를 만들었다는 시점보다 두 달이나 앞서 만든 태극기의 존재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시기는 미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1882년 5월이다. 당시 미국 측 전권대사 로버트 슈펠트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5월 22일 조약을 체결한 날 조선에 국기가 없는 것을 알고 “조선이 청나라 국기인 황룡기(노란색 바탕에 푸른 용이 그려진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기)를 내걸면 ‘중국의 속국’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며 “국기를 만들라”고 권고했다. 이에 조선의 전권위원 김홍집이 역관 이응준에게 태극기를 만들도록 했고 이응준은 미국 군함 스와타라호 안에서 국기를 만들었다. 4괘의 왼쪽과 오른쪽만 바뀌었을 뿐 지금의 태극기와 거의 같은 모양이다.
이 태극기는 1882년 7월 미국 해군부가 발간한 ‘해양국가들의 깃발’이라는 책에도 실렸는데 책의 존재가 국내에 알려진 것은 2004년이었다. 그러나 이응준이 만든 태극기가 ‘해양국가들의 깃발’에 실린 태극기와 같은 모습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근거는 없었다. 그러다가 2018년 이태진 서울대 교수가 미국 워싱턴 국회도서관 소장 ‘슈펠트 문서 박스’에서 태극기 그림을 발견하면서 의문이 모두 풀렸다. 슈펠트 관련 문서를 모아 놓은 이 상자에서 나온 태극기는 1882년 7월 ‘해양국가들의 깃발’에 실린 태극기와 똑같았다. 이로써 ‘이응준 태극기’는 현존하는 최초의 태극기 도안으로 입증되었다.
고종은 1883년 3월 6일(양력), 태극을 중심으로 건곤감리 4괘를 사각형 네 귀퉁이에 배치한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선포했다. 이듬해 조선은 태극기를 널리 알리기 위해 태극기 도안을 넣은 우표 5종 280만 장을 일본에 제작의뢰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의 요청과 달리 4괘를 삭제하고 태극문양도 중국의 태극도형으로 바꿔 우표를 보내왔다. 우리가 중국의 속국임을 나타내기 위한 치밀한 계산이었다.
현재의 국기가 대한민국 국기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49년 10월 15일이었다. 국내외를 통틀어서 가장 오래된 실물 태극기는 1884년 만들어져 현재 미국에 있는 ‘주이 태극기’이다. 국내에 남아 있는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886년부터 1890년까지 외교고문을 지낸 오언 데니라는 미국인이 만든 ‘데니 태극기’이다. 이 시기는 갑신정변(1884년)부터 청일전쟁(1894년)까지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내정 간섭이 유독 심할 때였다. 데니는 “조선은 청나라의 속방이 아니다. 청나라의 간섭은 부당한 것이며, 조선은 엄연한 독립국이다”라며 조선 편에 서다가 청나라의 미움을 받아 고문 자리에서 파면되었다. 이때 미국으로 돌아간 데니가 가져간 것이 ‘데니 태극기’로 알려진 태극기였다. 작별을 아쉬워한 고종 황제가 하사했다는 얘기도 있다. 가족 등이 대를 이어 간직하고 있다가 1981년 한국에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