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찰드 린드버그 아들 유괴사건

찰스 린드버그는 1927년 5월 뉴욕~파리간 세계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 시대의 총아였다. 2년 뒤 백만장자의 딸과 결혼하고 아들까지 얻어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1932년 3월 1일 밤, 20개월 된 아들이 뉴저지주의 자택에서 사라지면서 그의 인생은 풍파를 맞았다. 5만 달러를 요구하는 협박편지와 부서진 사다리만 발견되었을 뿐 딱히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경찰은 ‘anything’을 ‘anyding’으로, ‘good’을 ‘gut’로 쓴 협박편지를 보고서야 범인을 무식한 독일인으로 추정했다.

두 번째 편지가 도착하고 ‘돈을 주겠다’는 신문광고를 내고서야 범인으로부터 “만나자”는 전갈이 왔다. 4월 2일 린드버그는 공동묘지에서 복면의 범인과 만나 5만 달러의 현금을 건네주었다. 범인은 “아이 있는 장소가 적혀있다”며 쪽지만 내밀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아이는 없었고 50여일 뒤 시체로 발견됐다. 경찰이 기댈 것이라고는 범인에게 지폐를 건네줄 때 메모했던 지폐번호뿐이었다. 용의자가 체포된 것은 사건 후 2년 반이나 지난 1934년 9월 18일이었다. 한 주유소 직원이 문제의 지폐로 기름값을 지불한 용의자의 자동차 번호를 적어둔 것이 단서가 됐다.

용의자는 독일 태생의 브루노 하우프트만이라는 목수였다. 정황이 하나둘 맞아떨어지면서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단정지었고 여론 역시 그렇게 몰고 갔다. 하우프트만은 불법이민자로, 미국에 오기 전 고향에서 전과가 있었다. 차고에서 문제의 1만 4000달러가 발견되고, 범행 당시 발견된 부서진 사다리가 그의 집 지붕 아래 판자가 뜯겨나간 자리에 정확히 들어맞은 것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하우프트만은 결백을 주장했다. 1932년 함께 일을 하던 친구가 빚 때문에 독일로 돌아갔다가 그곳에서 죽었고, 자신은 뒤늦게 창고에서 그 돈다발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첫날 3000여 명의 방청객과 700여 명의 기자가 몰려들 만큼 전 국민의 관심사였던 재판 과정에서 목소리가 범인과 비슷하고, 협박 편지의 필체가 그의 것이라는 불리한 증언까지 있었지만 확증이 없고 석연치 않은 구석도 많아 재판 내내 논란이 분분했다. 하우프트만도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으나 배심원이 1급 살인혐의에 대해 유죄평결을 내리고 판사가 항소까지 기각해 결국 1936년 4월 3일 전기의자에서 죽음을 맞았다. 의혹이 많다 보니 설이 무성했다. “린드버그가 자신의 실수로 아들을 죽인 사고를 감추기 위해 유괴극을 조작했다”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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