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조선물산장려회(서울) 창립

1923년 1월 20일, 우리 토산품의 생산과 사용을 장려하고 우리 기업을 성장시켜 민족독립의 기틀을 마련하자는 ‘조선물산장려회’가 서울 낙원동 협성학교에서 창립됐다. 회의가 길어져 23일에 다시 모인 발기인들은 다가오는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옷과 음식, 일용품 등에서 조선물산을 사용하기로 결의하고, ‘남자는 두루마기, 여자는 치마를 입을 것’ ‘음식은 소금·설탕·과일 등을 빼고 조선물산을 사용할 것’ 등을 행동지침으로 결정했다. 물산장려운동은 서울보다 평양에서 먼저 일어났다. 평양에서는 1922년 6월 20일 조만식을 회장으로 한 물산장려회가 창립됐다.

창립초기에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데는 조선일보·동아일보의 지속적인 보도와 조선청년연합회가 현상모집한 표어가 크게 기여했다. ‘내 살림은 내 것으로’ ‘조선사람 조선 것’ 등의 표어가 전국적으로 전파되면서 대중의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켜, 길거리에서는 ‘물산장려’ 소리가 들렸고, 학교에서는 국산교복 착용운동이 일어났다. 심지어 기생들도 동참했으나 항일운동이라는 구실로 일본의 탄압이 가해지고 토산품값이 급등해 기업과 상인들만 살찌우고 일반 서민들은 더욱 궁핍해지는 예상치 못한 결과 때문에 기대만큼의 큰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사회주의자들도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생활 향상과는 무관하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결국 근근히 명맥만 유지하다가 1937년~1940년 경 해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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