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 피살

1930년 1월 24일, ‘청산리전투의 영웅’ 백야 김좌진이 중국 하얼빈 집 근처에서 괴한이 쏜 흉탄을 맞고 41세로 순국했다. 아들 김두한의 나이가 12세 때였다. 현장에서 잡히지 않은 범인의 이름이 처음 거명된 것은 5일 뒤 치러진 장례식장에서였다. 고려공산청년회 소속 박상실이 범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그러나 범인에 대한 증언이 사람마다 달라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범행동기가 무엇인지 어느것하나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아 궁금증 만 증폭됐다. 일제와 결탁해 암살됐느니, 김좌진이 조직한 한족총연합회의 급성장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라느니, 암살을 둘러싼 추측만 무성한 채 아직도 사건의 전모는 베일에 가려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그동안 거론된 의견들을 종합하면 일제 경찰에 매수된 한 공산당원이 “김좌진이 일제와 결탁했다”는 거짓보고를 상부에 올렸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이 암살을 결정·지시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결국 민족주의 계열과 공산주의 계열이 대립하는 가운데 일제의 조작된 정보에 의해 암살로까지 발전했다는 결론이다. 김좌진은 188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교육과 계몽운동에 매진하다 항일운동에 투신,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체포돼 2년6개월간 옥고를 치른 후 만주로 건너가 북로군정서 총사령관으로 청산리전투를 지휘, 혁혁한 승리를 거둔 독립운동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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