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의 주인공인 영화배우 최은희가 1978년 1월 14일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돼 북한으로 끌려감으로써 고단했던 인생사에 또 하나 시련이 더해졌다. 세상물정을 모를 때의 결혼과 실패, 6·25때 인민군에게 붙잡혀 북으로 끌려가던 중 청천강 부근에서의 탈출, 그리고 신상옥 감독을 만나 1960년대 한국 영화계를 이끌며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신 감독의 외도로 헤어져야 했던 아픔 등…. 은막에 비추어진 화려함과 달리 최은희의 삶은 파란만장의 연속이었다.
납치된 최은희가 도착한 곳은 평안남도 남포항이었다. 김정일은 평양에서 2시간 거리인 이곳까지 직접 마중나와 최은희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표시했다. 최 씨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전 남편 신상옥 감독도 6개월 뒤인 7월 19일 홍콩에서 납치되자 두 사람은 재결합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영화광인 김정일은 두 사람에게 낙후된 북한 영화의 활성화를 요구했고, 두 사람은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탈출기’ ‘소금’ 등 7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특히 ‘소금’은 최은희에게 1985년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주고 북한영화를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북한에서의 연기활동도 따지고 보면 탈출을 위한 8년간의 ‘연기’에 불과했다. 공산권의 각종 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김정일은 두 사람에게 특별히 동구권 여행을 허락했고, 두 사람은 마침내 1986년 3월 1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탈출에 성공한다. 8년 5개월 만에 찾은 자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