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우리나라 최초 이민선 갤릭호, 하와이 도착

1903년 1월 13일, 우리나라 최초 이민선 ‘갤릭(Gaelic)호’가 오랜 여정으로 파김치가 된 86명의 한인들을 낯선 땅 하와이 호놀룰루에 내려놓았다. 서자의 설움이 싫어서, 예수쟁이라고 놀림받아서, 시부모를 안모실 것 같아서, 저마다의 이민 동기는 다양했지만 신천지에 거는 기대 만은 한마음이었다. 조선 말기의 혼란과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량과 일거리를 찾아 멀리 시베리아나 만주로 떠나고 있던 때, 마침 1830년대부터 노동집약적 사탕수수 농업을 시작한 하와이에서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와이는 중국인, 일본인 노동자들의 숫자가 커지고 노동쟁의가 발생하는 등 골머리를 앓게 되자 한국, 필리핀 등지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신천지의 꿈을 안고 121명의 이민자가 제물포항을 출항한 것은 1902년 12월 22일이었다. 그들을 태우고 갈 배는 일본 오사카 상선 ‘겐카이호’였다. 일본 고베에 도착, 그곳에서 신체검사를 받아 20명이 탈락하고 배도 ‘갤릭호’로 갈아탔다. 호놀룰루에 도착해서도 신체검사 부적격 판정을 받은 15명이 제물포항으로 되돌아가 결국 남자 48명, 여자 16명, 어린이 22명 등 86명만이 하와이에 발을 내렸다. 이들에게는 3년간 농장에서 일한다는 조건으로 하루 품삯 50∼80센트(당시 쌀 10kg에 1달러)가 주어졌지만 하루종일 뙤약볕에서 일해야 하는데다 농장에 돌이 많아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었다. 감독이 채찍으로 다스린 농장도 있었다.

초기 이민자의 80% 이상이 20대 남자다 보니 결혼문제도 간단치 않아 ‘사진 신부’가 등장했다. 사진교환 만으로 결혼이 성사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 전에도 일본인을 통해 하와이로 팔려간 한인들이 일부 있긴 하지만 갤릭호 이민을 ‘최초의 이민자’로 간주하는 것은 1902년 대한제국이 외국여행권을 관장하는 ‘수민원(綬民院)’을 설립하고 처음 추진한 공식 인력송출이기 때문이다. 고생은 됐지만 하와이 생활에 대해 평판이 좋았던지 일본의 제지로 이민이 중단된 1905년까지 총 132편의 이민선에 7226명이 이민선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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