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日 메이지(明治) 천황 즉위

1867년 1월 9일, 무쓰히토(睦仁) 일본 천황이 15세 나이로 즉위했다. 가마쿠라(鎌倉)로부터 570여년, 도쿠가와(德川)로부터 260여 년 동안 천황을 대신해 전권을 휘둘렀던 막부제가 마지막 몸부림을 치던 때였다. 즉위 전부터 막부파와 반(反)막부파 간의 격렬한 전쟁을 목격하면서 시대의 급물살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무쓰히토의 즉위 후에도 소용돌이는 멈출 줄 몰랐다. 즉위한 그 해 12월이 되어서야 반막부파의 신정부군이 어린 천황의 권위를 빌어 ‘왕정복고’를 발표함으로써 거대한 소용돌이도 비로소 잠잠해졌다. 왕정복고는 과거의 지배 체제인 막부제를 끝내고 고대 천황제로 돌아가자는 주장이다.

이듬해 1월, 막부군과 신정부군 간의 대회전(大會戰)에서 신정부군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무쓰히토는 비로소 친정(親政)을 선언하지만 백성들에게 천황은 이미 잊혀진 존재였다. 신정부는 천황의 정치적 존재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대대적인 오사카 행차를 준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오사카·에도 등 100여 차례 이상 행차한 정치 이벤트가 진행되면서 천황의 실체가 차츰 국민들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9월에는 원호(元號)를 ‘메이지(明治)’로 정해 이른바 ‘메이지 시대’를 열었다. 이듬해에는 막부의 아성이던 ‘에도(江戶)’의 이름을 ‘도쿄(東京)’로 바꿔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다.

메이지(明治)는 ‘성인(聖人)은 즉위하면 천하를 바르게(明) 통치한다(治)’는 역경에서 인용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자신감이 붙은 메이지는 ‘군인칙유’(1881), ‘일본제국헌법’(1889), ‘교육칙어’(1890) 등 굵직한 정책들을 속속 발표하며 절대주의적 천황제국가를 완성해 갔다. 보잘 것 없는 동양의 외딴섬을 서구 열강과 어깨를 견주는 근대 제국으로 발돋움시킨 메이지의 45년 치세는 일본이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아시아의 패자로 우뚝서게 한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메이지시대가 찬란한 빛을 발할수록 조선과 대만, 류큐(琉球·오키나와) 등 주변국들은 불행한 근현대사를 맞아야했다. 1912년 7월 30일, 61세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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