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나석주 의사, 동양척식회사에 폭탄 투척 후 자결

한겨울의 바닷바람이 매섭던 1926년 12월 26일. 중국을 떠나 인천항에 닿은 여객선에서 중국인 복장의 한 청년이 내렸다. 6년 만에 조국을 다시 찾은 나석주 의사였다. 그는 1913년 21세 때 만주로 떠나 군 간부로 활동하던 중 모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 3·1운동 때 시위를 주도하다 옥고를 치른 전력이 있었다. 출옥 후에는 의열투쟁 조직을 결성해 황해도 사리원과 안악의 부호들로부터 거액의 군자금을 모집하며 일경과 친일파를 살상했다.

쫓기는 몸이 돼 1920년 상해로 간 그는 동향 사람 백범 김구 밑에서 밀정을 찾아내고 임시정부 요인들을 경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그를 ‘제자이자 동지’라고 표현할 만큼 각별하게 대했다.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던 중 민족지도자 김창숙으로부터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와 식산은행을 파괴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설명을 듣고 인천으로 잠입했다.

12월 28일 오후2시를 갓넘긴 시간. 나 의사는 식산은행(롯데백화점 자리)에 들어가 폭탄을 던졌다. 불발이었다. 태연하게 정문을 나선 그는 발걸음을 인근의 동척(외환은행 본점자리) 건물로 움직였다. 동척에서 수 명의 일본인을 향해 권총을 난사하면서 폭탄 1개를 던졌으나 또 불발이었다. 나 의사는 몰려온 일경과 총격전을 벌이며 을지로 2가쪽으로 도주했으나 점점 일경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운집한 군중을 향해 외쳤다.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말라!” 그리고 자신의 가슴에 권총을 겨눴다. 3발 중 2발이 가슴을 관통해 급히 총독부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오후 4시쯤 숨을 거뒀다. 34세였다. 길에는 일본인들이 흘린 피로 선혈이 낭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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