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찬위원회 설치

일제의 강제적인 조선 병합 13년째가 되는 1922년 12월 4일, 조선총독부가 훈령 제64호로 ‘조선사편찬위원회’를 설치, 본격적인 한국사 왜곡에 착수했다. 박은식의 ‘한국통사’(1915)가 국내에 유입되면서 고취된 민족의식과 3·1운동으로 폭발하기 시작한 항일독립운동의 기운을 희석시키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총독부 정무총감이 위원장을 맡고 이완용·박영효·권중현 등 친일파 인사들이 고문으로 추대됐다.

이들은 조선사강습회를 개최하고 ‘조선사 강좌’(1923-1924)를 간행하는 등 왜곡된 역사를 토대로 부정적인 역사인식을 주입함으로써 조선인의 민족혼을 순치시키려했다. 또 역사왜곡을 위해 ‘분서(焚書)’도 서슴지 않았다. 초대 총독 데라우치는 전국에 있는 한국사 관련 서적 색출에 나서 이미 ‘단군조선’’관련 고사서 등 20여만 권을 수거, 불태운 바 있었다. 중국·만주에 있는 것은 물론 심지어 소학교 교과서까지 수집해 그들의 의도와 배치되는 고서는 모두 불태웠다. 그럼에도 조선사편찬 사업이 순조롭지 않자 사이토 마코토 총독은 격을 한 단계 높인 천황 칙령 218호로 조선사편찬위원회를 해체하고 ‘조선사편수회’를 출범시켰다. 총독부 직속 독립관청으로 승격시켜 한국사 연구의 총본산으로 삼고 ‘조선사’ 간행을 서두르기 위한 조치였다.

그 결과 1937년 ‘조선사’가 완간된다. 전 35책 2만4000쪽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한민족의 역사는 외세에 의해 좌우된 타율적인 역사였으며, 수천 년 발전이 없는 정체된 역사였다는, 이른바 ‘식민사관’의 결정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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