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여기는 동아방송입니다. HLKZ.” 동아방송의 고별방송을 하는 송지헌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17년 7개월 간 국민의 소리를 대변해온 동아방송의 전파는 이렇게 한 순간에 멎었다. 1980년 11월 30일 자정이었다.
비극은 그해 11월 12일에 일어났다. 그날 오후 5시를 넘겨 동아방송 김상만 회장과 이동욱 사장이 보안사를 찾았고 두 사람은 이 대령이라는 수사관으로부터 동아방송 포기를 요구받았다. 언론통폐합 조치의 일방적인 통고였다. 포기각서의 서명이 집요하게 강요됐으나 두 사람은 거부했다. 실랑이가 3시간 반 동안이나 계속되자 수사관은 이병철 삼성 회장의 포기각서를 내보였다. 이 회장도 조금전 보안사에서 동양방송 포기각서에 서명한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준비된 내용대로 포기각서를 받아쓰고는 차례로 서명하고 무인을 찍었다.
1963년 4월 25일 첫 전파를 쏘아올린 동아방송은 개국과 함께 선구적 프로그램과 칼날같은 비판의 목소리로 방송문화를 선도했다. 한국방송사상 최초의 디스크자키(DJ)를 선보인 것도 동아방송이었다. 첫 수난은 1964년 6․3사태 때 찾아왔다. ‘앵무새’라는 프로그램이 내란을 선동하고 학생시위를 배후조종했다며 6월 4일 최창봉 방송부장 등 6명을 구속한 것이다. ‘앵무새’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처음 도입한 고발성격의 사회비평 방송칼럼이었다.
1980년 11월 30일 동아방송이 고별방송을 하고 있던 같은 시각, 동양방송(TBC)도 눈물의 마지막 방송을 하고 있었다. 종방시간인 밤 11시30분까지 진행된 TBC TV의 마지막 특집프로그램은 이별과 아쉬움의 뒤범벅이었다.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을 부르다 끝내 울음을 터뜨린 가수 이은하는 계엄당국의 고별방송지침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3개월 간 방송출연정지를 당했다. 라디오방송의 마지막은 ‘황인용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가 채웠다. 황인용은 울먹이며 청취자와의 작별을 고했다. “끝으로 호출부호를 불러보겠습니다. 여기는 HLKC. 639kHz 동양방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