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헨리 모턴 스탠리 기자, 5년간 소식 끊긴 리빙스턴을 아프리카에서 발견

그 무렵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5년 간이나 바깥세상과 소식이 끊겨 있었다. 16년 만에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1856년에 이미 그는 국민적 영웅이었고, 탐험기 ‘남아프리카 전도여행’이 7만 권이나 팔려나가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 유명인사였다. 사자에게 물려 평생 왼팔을 들지 못하면서도 아프리카의 동서를 육로로 가로질러 대서양과 인도양을 모두 바라보고, 발견한 거대한 폭포를 ‘빅토리아 폭포’로 이름지어 여왕의 이름을 후세에 영원토록 알린 것도 리빙스턴이었다. 그런데 네 번째 탐험길을 떠난 1866년부터 소식이 끊긴 것이다.

뉴욕헤럴드가 그를 찾기 위해 통신원 스탠리를 파견했다. 1년이나 밀림 속을 찾아헤맨 스탠리가 1871년 11월 10일 그를 발견했을 때 리빙스턴은 영양실조와 말라리아로 거의 죽음을 눈앞에 둔 처참한 모습이었다. “리빙스턴 박사님이시죠?(Dr.Livingstone, I Presume)” “예, 당신을 이곳에서 만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Yes, and I feel thankful that I am here to welcome you)” 서양인들은 이 짧은 대화에서 지금까지도 감동을 느낀다고 한다.

스탠리는 5개월 뒤 떠나고 리빙스턴은 현지에 남아 나일강의 수원을 찾다가 1873년 5월 1일 오두막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숨을 거뒀다. 선교와 노예무역을 뿌리뽑기 위해 아프리카에 온 지 어느덧 33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주민들은 그의 심장과 내장을 빼내 아프리카에 묻고 주검은 말려서 미라로 만들어 영국으로 보냈다. 미라 시신은 1874년 4월 18일 웨스트민스트 사원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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