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가을로 접어들면서 리하르트 조르게는 더욱 불안해졌다. 일본 경찰의 포위망이 점점 자신을 향해 좁혀오고, 조직원들이 속속 잡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시바삐 일본을 벗어나야 했지만 1년 동안 정을 나누었던 무희(舞姬)를 생각하며 망설였다. 그날 조르게는 마지막으로 무희의 집을 찾았다. 그 긴박한 순간, 조르게는 가슴이 머리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었고 결국 그날 밤 조르게는 여인의 품에서 체포됐다. 1941년 10월 18일이었다.
그때까지도 일본 경찰은 조르게의 정확한 첩보 활동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독일인이므로 당연히 독일을 위해 활동했으려니 생각했으나 취조 결과는 뜻밖이었다. 독일의 적국 소련을 위해 활동한 것이 아닌가. 1차대전이 일어났을 때 조르게는 고교를 중퇴하고 참전, 3번이나 부상당할 정도로 용감하게 싸운 전형적인 독일인이었다. 그러나 병원에서 만난 의사를 통해 공산주의 사상에 빠지면서 그의 조국은 독일이 아니라 소련으로 바뀌었고 그는 골수 공산주의자가 됐다.
미국의 헐리우드와 중국에서 첩보 활동을 벌이던 조르게가 독일의 유력지 기자 신분으로 일본 땅을 밟은 것은 1933년이었다. 그가 일본에서 소련에 보낸 정보는 ‘세기의 스파이’답게 전쟁의 흐름을 바꿔놓을 만큼 파괴력이 크고 정확했다. 스탈린이 무시해 대비는 못했지만 독일의 소련침공 일자를 알린 것도 조르게였고, 일본 관동군이 시베리아를 칠 계획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 소련이 시베리아 병력을 유럽으로 전격 이동시켜 대(對)독일전에 집중할 수 있게 한 것도 조르게였다. 소련의 혁명기념일이던 1944년 11월 7일 사형에 처해져 도쿄에 묻혔다. 49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