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국 신문만화의 효시를 말할 때 1909년 6월 2일자 대한민보 창간호 1면에 실린 한 컷 만화를 꼽는다.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만화라기보다 만평(漫評)에 가깝지만 한국 신문만화사(史)의 중요한 이정표임에 틀림없다. 대한민보는 1910년 6월 5일부터는 신문 연재소설에 삽화까지 실어 초기 한국신문의 비주얼화를 선도했다. 초기의 신문만화는 ‘만화’가 아니라 ‘다음엇지’라는 순수 우리말 용어로 불렸다. “다음 그림 칸을 보아야 무슨 내용인지 알수 있다”는 뜻이었으나 얼마안가 사라졌다.
대한민보 폐간 후에는 조선일보·동아일보가 그 역할을 대신해, 조선일보는 연재만화를, 동아일보는 독자투고 만화를 싣기 시작했다. 한국신문사상 최초의 네 컷짜리 연재만화가 처음 시도된 것은 1924년 10월 13일자 조선일보였다. 미국의 조지 맥마너스의 만화 ‘매기와 지그스’에서 착안한 ‘멍텅구리 헛물켜기’란 명랑만화였다. 주인공 최멍텅과 친구 윤바람, 그리고 미모의 기생 신옥매가 등장, 한량과 기생의 연애행각을 그린 ‘멍텅구리…’는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에 독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림은 나중에 동양화의 대가가 되는 심산 노수현이 그리고 줄거리는 조선일보 편집고문 이상협과 주필 안재홍이 꾸몄다.
‘멍텅구리…’는 1924년 11월 30일 48회까지 연재된 후 소제목을 바꿔 ‘멍텅구리 련애생활’ ‘멍텅구리 가뎡생활’ ‘멍텅구리 세계일주’ 등 시리즈로 연재되며 2년 5개월 동안 총 501회나 연재되다 1927년 3월 11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926년 1월 11일부터는 영화로 제작된 ‘멍텅구리 헛물켜기’가 조선극장과 우미관에서 상영돼 만화만큼이나 큰 인기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