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배재학당, 1886년 이화학당 등 사학들이 생겨나자 대한제국 정부가 1886년 9월 미국인 헐버트 등을 교사로 초빙해 ‘육영공원’이라는 근대식 관학기관을 설립했다. ‘육영공원’은 정치·경제·수학·영어같은 근대 학문을 가르쳤으나 학생들이 전통에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고 이에 실망한 외국 교사들이 자국으로 돌아가자 개교 8년만인 1894년에 문을 닫았다.
다시 근대화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워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1895년 8월 지금의 국립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관립 소학교’를 세웠다. 이 소학교가 지금의 교동초등학교다. 이때 정부는 학교를 정부가 세운 관립학교, 관민이 공동으로 세운 공립학교, 사립학교로 구분했다. 반상의 차별이 있던 탓인지 정부는 공립과 사립에는 ‘심상과’만 두고 관립학교에는 심상과와 더불어 고등과를 두었다. 심상(尋常)은 ‘대수롭지 않다’ ‘보통이다’는 뜻이므로 심상과는 요즘 말로 하면 ‘보통과’를 의미한다. 3년 과정인 심상과를 졸업하면 상급학교인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으나 5년 과정인 고등과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관립 소학교 고등과는 1897년 7월부터 졸업생이 배출됐으나 그때까지도 정부는 아직 중학교를 설립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무렵 외국어를 통역할 역관 수요가 늘어나면서 일어학교(1891년), 영어학교(1894년) 등이 문을 열었고 1895년에는 한성사범학교가 설립됐다. 1899년에는 의학교와 상공학교도 생겨나는 등 전문학교들이 인기를 끌다보니 인문사회과학에 해당하는 보통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이를 해결하고 소학교 졸업생도 진급시키기 위해 정부는 1899년 4월4일 중학교 관제를 규정한 칙령 11호를 공포해 중학교 설립을 추진했다. 이때도 역시 공사립 중학교에는 심상과만 두고 관립중학교는 심상과와 고등과를 두도록 했다. 심상과는 4년 과정이었고 고등과는 심상과 4년에 고등과 3년을 추가했다.
이 규칙에 근거해 1900년 10월 3일 서울 종로구 화동 1번지에 개교한 것이 ‘관립 중학교’다. 이곳은 누대에 걸쳐 조선의 명문 거족들이 몰려살던 곳으로 ‘관립 중학교’가 처음 터를 잡은 곳은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의 집터였다. 이어 서재필의 집터도 교사 터로 흡수됐다. 4년제 심상과만 운영하고 7년제 고등과는 아직 설치하지 못한 10월 3일의 개교는 이필균 교장과 7명의 교사, 85명의 학생으로 출발했다. 이들이 졸업한 것은 1904년 7월로 20명만이 문을 나섰다. 다른 입학생은 보통학을 써먹을 분야가 없고 짧지 않은 4년의 수학기간으로 모두 중도에 포기했다. 이후 ‘관립 중학교’는 관립한성고등학교(1906년), 경성고등보통학교(1911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1921년)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1925년)로 개칭됐다가 해방 후 경기공립중학교를 거쳐 경기중·고로 명칭이 정착됐다. 1975년 강남으로 이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