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의 달마산은 쩍쩍 갈라진 기암괴봉과 다도해 조망이 일품인 ‘남도의 금강산’… 종주를 함께 한 친구가 말했다. “날씨 좋고 조망 좋고 친구가 좋으니 완벽한 조화로구나”
2019년 9월 14일 · zznz
↑ 종주길은 이런 기암과 다도해 조망의 연속이다. 사진은 동쪽 북평면과 완도
by 김지지
미황사~달마산 정상 왕복 코스 2.8㎞에 1시간 30분
달마산 정상~도솔암 종주 코스 7㎞에 5~6시간
■달마산과 미황사는 한 몸
전남 해남의 달마산과 미황사는 한 몸이다. 미황사는 달마산 줄기 한 가운데에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고 달마산은 미황사 뒤쪽에서 듬직한 모습으로 미황사를 감싸고 있다. 달마산 줄기는 마치 공룡의 등뼈 같고 미황사는 고색창연하다.
달마산과 미황사를 찾아간 것은 천지가 초록으로 물든 2019년 5월 1일. 일정은 미황사 경내를 둘러보고 달마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서울을 떠나 미황사가 가까워오자 이십 몇 년 전 찾아갔을 때가 떠올라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희미한 내 기억 속의 미황사는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고 그 아래에 마을이 조성되어 있었으며 마을 앞에는 바다가 펼쳐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미황사가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말고는 마을과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내 기억 속의 미황사는 미황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날카로왔던 젊은날 기억력이 무뎌지고 뭉개진 탓이다.
아내와 함께 한 2019년의 산행은 미황사에서 달마산 정상까지만 다녀오는 2.8㎞에 그치고 달마산 종주를 하지 않은 것이어서 두고두고 아쉬웠다. 결국 그로부터 1년 뒤인 2020년 4월 26일 또다시 달마산을 찾아가 7㎞의 종주를 하고 돌아오니 그제서야 밀린 숙제를 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산줄기는 공룡의 등뼈 같고 미황사는 고색창연한 고찰
미황사는 한반도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절이다. 일대는 2009년 대한민국 명승 제59호로 지정되었다. 경내에는 보물 제947호인 대웅보전, 보물 제1183호인 응진당 등의 문화재가 있다. 신라 경덕왕 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창건 설화가 흥미롭다.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돌로 만든 배가 해남 땅끝마을의 사자포구에 닿았다. 그곳에는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배 안에는 화엄경, 법화경, 비로자나 문수보살, 탱화 등이 있었다. 의조대사와 향도들이 배에 있는 것들을 모두 내려 봉안할 곳을 물색하는데 어느날 밤 의조대사 꿈에 금인(金人)이 나타나더니 “나는 본래 우전국의 왕으로 경상(經像·불경과 불상)을 모실 곳을 찾다 이 산에 일만 불(佛)이 있어 여기에 배를 세웠다. 소에 경을 싣고 나가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봉안하라”고 일러주었다. 그후 의조화상은 소 등에 경전을 싣고 가다가 소가 산 골짜기에서 외마디 울음을 남기고 쓰러지자 그 자리에 749년 미황사(美黃寺)를 세웠다는 게 창건 설화다.
미황사 이름 또한 설화에서 유래한다. 미(美)자는 소의 ‘음매’ 하는 소리에서 따오고, 황(黃)자는 배를 몰고 온 금인의 색을 뜻한다. 우전국은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도 등장하는 곳으로, 지금의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호탄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사자포구는 현재의 갈두항으로 추정한다. 미황사에서 봐야 할 것이 대웅보전 앞에서 바라보는 노을이다. 절집을 온통 붉고 노랗게 물들이는 그 노을을 두고 한 스님은 ‘석양 보시’라고 했단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대웅전 높은 축대 한쪽에 걸터앉아 멀리 어란포에서 불어오는 서풍을 마주하고 장엄한 낙조를 바라볼 것을 권한다.
정상 높이는 489m에 불과하지만 능선은 울퉁불퉁한 기암과 괴봉의 연속
달마산은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바위 명산이다. 정상 높이가 489m에 불과하지만 능선은 울퉁불퉁한 기암과 괴봉의 연속이다. ‘남도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달마산은 북쪽의 큰바람재에서 남쪽의 도솔봉까지 이어진 암릉 줄기다. 호남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땅끝기맥이 영암 월출산과 해남 두륜산 등의 걸출한 산을 세우고 마지막 힘을 짜내 솟아올라 빚어낸 것이 달마산이다. 땅끝기맥은 달마산을 떠나 해남 땅끝에서 맥을 다하므로 달마산은 우리 국토의 대미를 마감하는 산인 셈이다.
호남정맥은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에서 갈라져나와 호남 지역을 지나는 산줄기이고 땅끝기맥은 호남정맥의 한 줄기가 전남 화순군 바람재(노적봉)에서 바다로 방향을 틀어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까지 약 300리에 달하는 한반도의 마지막 맥이다.
‘달마(達摩)’는 인도 파사국의 왕자였다. 중국으로 건너가 선종을 이끌었다. 선종은 글씨나 불경을 잘 모르더라도 수행을 잘하고 선행을 쌓으면 마음속의 부처를 꺼낼 수 있다고 믿는 불교의 종파다. 체계적인 ‘학문과 배움’으로 믿음과 깨달음을 구할 수 있다는 교종이 대세이던 시절에 선종의 주장은 혁신이었다.
따라서 달마는 배척의 대상이었고, 죽음의 위기를 수없이 겪다가 결국 모함을 받아 죽음에 이른다. 그리고 3년 뒤 달마는 부처의 몸이 돼서 인도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해남의 전설에 의하면 달마는 서쪽의 인도로 가지 않고 동쪽의 해남 땅으로 왔다. 산 이름이 달마산이 된 내력이다. 그렇다고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달마와 관계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 제목은 불교에서 말하는 화두로, 참선을 통해 진리를 깨우치는 수도승들의 깨달음을 상징한다.
달마산 등정 코스는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등 다양해
달마산은 암봉들이 날카롭게 쪼개지는 규암이어서 감상용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산행길에는 속도를 더디게 한다. 따라서 자신의 산행 능력에 맞춰 코스를 선택해야 한다. 코스는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등 다양하다.
대표적인 단거리 코스는 미황사에서 달마산 정상인 불썬봉(달마봉)을 오르고 내리는 코스다. 미황사에서 불썬봉으로 직행하거나 불썬봉에서 0.3㎞ 떨어진 문바우재로 올라가 불썬봉을 거쳐 미황사로 하산한다. 역순도 가능한 이 코스는 2.8㎞ 거리여서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미황사에서 출발하는 중거리 코스도 인기다. 그중 하나는 미황사에서 왼쪽(북쪽)의 큰바람재까지 이어지는 달마고도 1코스(2.71㎞)를 지나 오른쪽 주능선으로 치고 올라가 관음봉을 거쳐 정상(불썬봉)을 밟은 뒤 문바우재를 거쳐 미황사로 내려오는 코스다. 총 7.6㎞ 거리에 4시간 정도 걸린다. 이 코스에서 관음봉은 해남의 동쪽 해안과 바다 건너 진도 일대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특급 조망대다. 달마산 종주 내내 바다를 보고 걷지만 바다와 해안 경관이 가장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곳이 관음봉이다.
중거리 코스 중 또 하나는 미황사에서 불썬봉으로 올라갔다가 암릉을 타고 문바우재~대밭삼거리~하숙골재~떡봉~도솔암을 지나 도솔봉주차장에서 택시를 타고 미황사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이 코스도 8㎞ 남짓 거리이고 5~6시간 정도 걸린다. 이번에 내가 다녀온 코스다. 장거리 코스는 미황사를 출발해 왼쪽 큰바람재나 오른쪽 도솔봉주차장을 거쳐 반대 방향으로 갔다가 미황사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단거리 코스 : 미황사에서 정상으로 올라가 내려오는 길… 2.8㎞ 거리에 1시간 30분 소요
2019년 등정한 단거리 코스부터 살펴보자. 출발점은 미황사 일주문 왼쪽 옆 안내판 쪽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출발해 헬기장을 거쳐 문바우재로 올라가 불썬봉(달마봉)에서 미황사로 내려왔지만 역순으로 진행해도 된다. 등산로 곳곳에 이정표가 있는데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이 통나무로 만든 달마고도 안내목이다. 요즘엔 어디가나 산마다 까마귀가 많은데 이곳 까마귀 울음소리는 변성기처럼 꺽꺽거린다.
초반에는 유순하다가 중간쯤부터는 급경사다. 그러나 오르면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좋아 땀과 노력을 상쇄해준다. 중간의 너덜지대는 거대한 채석장을 방불케 했으나 이곳 역시 조망이 좋다. 급경사를 거쳐 밧줄에 의지해 암봉을 넘어서니 좁아서 빠져나기가 어려울 것처럼 보이는 문바우재의 두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문바우재에서 내려다보니 동서 양쪽 다도해와 섬들이 점점이 펼쳐있다.
문바우재에서 길은 세 가닥으로 갈라진다. 능선을 넘어서면 북평면 서승리 신평마을로 내려서고, 오른쪽 길은 도솔봉(418m)을 거쳐 해남의 땅끝마을로 이어진다. 정상으로 가려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문바우재를 넘어 50m 정도 내려가니 5월 1일인데도 빨간색의 동백나무 꽃이 씩씩하고 생생하게 핀 상태로 산중턱에서 동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정상으로 가려면 능선 절벽을 끼고 올라가야 하나 위험하지 않고 시야가 탁 트여 발걸음이 가볍다. 문바우재에서 300m 정도를 올라가니 정상이다.
정상석에는 달마봉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정확히는 불썬봉이다. 옛날 정상에 세워진 봉수대에서 불을 피웠다 하여 ‘불썬봉’이다. ‘불을 켠다’에서 ‘켠다’의 전라도 사투리는 ‘쓴다’이다. 불썬봉이란 ‘불을 켠 봉우리’의 전라도 사투리인 것이다. 봉수대여서 돌탑이 쌓여있다. 정상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문바우재를 거치지 않고 바로 하산하니 급경사다. 미황사로 내려와 달마봉을 바라보니 돌 병풍이 미황산을 두르고 있는 듯 하다. 올라갈 때보다 더 멋져 보였다. 왕복 거리는 2.8㎞이고 소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다.
■중거리 코스 : 미황사~달마산 정상~도솔암으로 이어지는 종주길… 7㎞에 5~6시간 걸려
미황사~정상~도솔암으로 이어지는 달마산 종주를 시도한 것은 단거리 코스(미황사~달마산 정상)를 다녀오고 1년이 지난 2020년 4월 26일이다. 동행자는 고교 동기 3명에 나를 포함해 4명이다. 20살이던 1980년 여름 설악산에 함께 다녀왔던 친구들이다. 따라서 거창하게 표현하면 설악산 등정 40년 기념 산행이다. 그때 함께 갔던 5명의 친구 중 1명은 12년 전 하늘나라로 떠나고 없다. 1년 전 단거리 코스를 다녀온 후 계속 종주 코스가 궁금했는데 1년만에 소원성취한 셈이다. 달마상 종주는 동행한 영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여서 더 각별했다. 영석이 말한다. “날씨 좋고 조망 좋고 친구가 좋다”고.
우리의 산행을 종주라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큰바람재(북쪽)~도솔봉(남쪽)까지 9.75㎞가 종주이고 우리 코스(5.9㎞)는 종주의 4분의 3 거리이니 세미 종주인 셈이다. 정상에서 바라본 도솔봉까지의 능선은 약간씩 우회·좌회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직선이다. 능선의 조망이 장관이다. 동쪽으로는 해남 북평면과 완도가 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해남 송지면과 멀리 진도와 일대의 다도해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북쪽은 두륜산이고 남쪽은 땅끝마을과 다도해의 섬들이다.
오늘 코스 거리는 7㎞다. 미황사에서 불썬봉까지 1.1㎞, 불썬봉에서 도솔암까지 5.2㎞, 도솔암에서 도솔봉주차장까지 0.7㎞다. 우리는 도솔암까지 갔다가 도솔암에서 400m 아래 지점에 있는 달마고도 제4코스(몰고리재~미황사, 5.3㎞)를 타고 미황사로 원점회귀할 생각이었으나 일정이 빡빡하고 그 길이 다소 지루하다는 회사 동료의 말을 듣고 도솔봉주차장에서 택시를 불러 미황사로 원점회귀하기로 했다.
거리에 비해 암릉이 많아 시간은 길어지고 체력 소모 커
정상에서 바라볼 때 남쪽 멀리 도솔봉 위에 걸려있는 통신 안테나 주변이 우리의 목적지다. 거리에 비해 암릉이 많아 시간은 길어지고 체력 소모도 적지 않을 것이다. 능선 오른쪽으로는 달마산의 경사면 일부와 송지면이 펼쳐있고 저 멀리 길게 늘어진 진도가 희미하다. 왼쪽으로는 북평면과 바다 건너 완도가 길게 뻗어있다. 육지와 완도를 잇는 완도대교가 선명하다. 북평면은 바다와 붙어있는데도 밭들이 널찍하게 잘 정비되어 있어 평화롭고 풍요로운 모습이다. 남쪽으로는 다도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 남서해안의 다도해에는 2,3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흩어져 있다. 달마산 능선이야말로 다도해 감상에 적격이어서 일부러 다도해 경관을 보려고 달마산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능선이 온통 바윗길이다. 바위는 날카롭게 쪼개지는 규암이어서 아슬아슬한 칼산 능선도 있다. 다행히 등산로만 따를 경우 위험하다고 할 만한 길은 없지만 데크 계단이 드물고 밧줄이 많아 두손두발을 써야 하는 구간이 간간이 있어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불썬봉에서 0.3㎞ 거리를 한참 내려가면 거대한 바위들이 버티고 있는 문바우재가 있다. 이 구간은 거리가 짧지만 달마산 암릉의 축소판이다. 울퉁불퉁하거나 쩍쩍 갈라진 바위들의 연속이고 로프를 타는 암릉길도 있다. 문바우재 오른쪽이 미황사 하산로이고 왼쪽이 북평면 신평마을이다. 거대한 바위 두개가 우뚝 솟아 대문 형상을 하고 있는 문바우 사이로 바라보는 미황사가 장관이다.
문바우재를 지난 후에도 아슬아슬한 바위 사이를 오르내리며 날선 바위를 딛고 걸어야 하는 구간의 연속이다. 운동은 좋아하나 등산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온 기림이 “친구 잘못 만나 고생한다”며 연방 투덜대고 걷는다. 문바우재에서 1.3㎞ 거리를 지나면 대밭사거리다. 짧은 거리인데도 정상에서 2시간이나 걸렸다. 쉬어가라고 나무 의자가 있고 얼굴을 밀착시킨 부부바위도 있다.
종주 능선이 힘들다 싶으면 대밭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하산하면 된다. 0.8㎞ 아래에 미황사로 갈 수 있는 미황사 부도암이 있다. 이렇듯 능선 중간에 미황사로 이어진 달마고도 제4구간과 만나는 곳이 있으니 그곳에서 하산하면 된다. 그곳이란 문바우재, 작은금샘사거리, 대밭사거리, 하숙골재 등 네 곳이다. 결국 걷다가 힘이 들면 속도를 조절하면 되고, 종주 길이 거칠면 언제든 유순한 달마고도로 내려서서 걸어도 되는 것이다.
거리 잘못 표시한 안내목 많아 답답
대밭사거리 전과 후에 작은금샘과 큰금샘이 있다고 하는데 거칠고 험한 바위 사이로 난 길을 찾느라 도무지 샘을 찾을 여유가 없다. 바위 봉우리를 넘어가거나 우회해도 봉우리들이 계속 앞을 가로막는다. 불썬봉(489m)과 도솔봉(418m) 사이에 귀래봉(471m), 460m봉, 떡봉(422m)이 있고 이 봉우리 말고도 암산들이 중간중간 뾰족뾰족 우뚝 솟아있다. 기암괴석의 색이 흰색에 가까운 잿빛인데 해가 비치면 반사되어 그 자체로 절경이다. 대밭사거리 이후부터는 상대적으로 길이 쉽고 흙길도 드문드문 보인다. 능선은 조금씩 해발고도를 낮추는 길인데도 오르고 내리는 구간이 많아 피곤하다. 게다가 무리하지 않고 쉴멍놀멍 가다보니 다른 등산객들이 계속 우리를 추월한다.
대밭사거리에서 1시간 동안 1.2㎞를 지나니 하숙골재가 나온다. 그 사이에 471m봉과 460m봉을 지난다. 하숙골재를 지나면 푸근한 흙길 능선이 피곤함을 덜어준다. 하숙골재에서 1㎞ 정도 지나면 도솔봉의 안테나가 선명히 보이는 떡봉(422m)이다.
도솔암 도착 전 마지막 봉우리는 359m봉이다. 그곳부터는 도솔봉 통신안테나를 바라보면서 걷게 된다. 도솔암에 도착하니 오후 2시 50분이다. 미황사를 출발한 게 오전 8시 50분이고 불썬봉을 출발한 게 오전 9시 50분이니 걷고 쉬고 한 시간은 총 6시간이다.
불썬봉에서 도솔암까지 능선길에는 안내목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불썬봉에서 도솔봉주차장까지 거리가 5.9㎞인데도 4.7㎞로 표시된 곳도 있다. 정상에서 대밭사거리까지도 1.6㎞인데 정상에는 2.6㎞로 표시되어 있고 1.3㎞로 표시한 안내목도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 산에는 거리를 제대로 표시하지 않고 들쑥날쑥인 안내목이 많다. 심지어 국립공원도 이런 경우가 부지기수다. 답답하다.
도솔암, 정유재란 때 불에 탄 뒤 방치되었다가 2002년 새로 지어
도솔암은 V자 형태로 벌어진 절벽 사이에 쌓은 석축 위에 앉아 있다. 산 아래 촌락과 들녘 그리고 바다를 굽어보며 천 길 허공에 떠 있는 듯하다. 삐쭉삐쭉 솟은 기암괴석이 도솔암을 호위하는 형상이다. 도솔암은 한자로 도솔천 도(兜), 거느릴 솔(率)을 쓴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기 전 머물렀던 도솔천(兜率天)에서 따 왔다. 불가에서 수미산 꼭대기에 보석으로 지어진 천상의 세계를 가리킨다. 그래서 도솔암은 전국에 많다. 고창 선운사에도, 여수 영취산 흥국사에도 도솔암이 있다. 검색을 해보면 30여 군데나 나온다. 그중 첫손가락에 꼽히는 곳이 해남 도솔암이다.
역사는 1000년이 넘는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통일신라 말기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도 여기서 수도했다.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해 불에 탄 뒤 420여 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2002년 법조스님과 신도들의 노력으로 다시 지어졌다. 도솔암은 밑에서 올려다보는 모습도 비경이다. 조망지점은 도솔암 바로 아래에 있는 삼성각이다. 여기서 요새 같은 도솔암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솔암에서 50m 쯤 아래에 용담굴이 있고 그 안에 샘이 있다. 일 년 내내 마르지 않는 용담이다. 산 정상에 있는 바위 틈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이 만들었다.
도솔암의 외형은 이렇게 멋지지만 막상 가서 보면 멀리서 봤을 때처럼 멋지지는 않다. 전각도 커다란 바위 사이에 올려져 있는 한 칸짜리가 전부다. 전각이 서너 평 남짓으로 작고 마당도 좁다. 20여명이 들어서면 마당이 꽉찰 것 같다. 도솔암을 빠져나와 도솔봉에 오르고 싶었으나 친구들이 지친데다 원치 않는 표정이어서 포기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도솔봉에는 군부대가 있어 올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새삼 친구들의 포기가 혜안처럼 느껴진다.
도솔암에서 멀지 않은 ‘미황사 천년의 길’도 걸어볼만한 곳
도솔암에서 400m를 내려가면 달마고도 제4코스다. 이 코스는 ‘미황사 천년의 길’의 일부이기도 하다. 천년의 길은 미황사에서 출발해 땅끝마을까지 연결된 길이 16㎞가량의 둘레길이다. 미황사에서 도솔암까지 길을 살펴본다. 미황사에서 10분 정도 올라가면 부도암이 나오고 다시 30분 정도 숲길을 걸으면 부도암 앞 임도에 도착한다. 부도암에는 고승의 사리를 담은 부도탑이 모여 있는데 돌로 만들어 그 자체로 조형예술품이다. 게, 물고기, 거북이 문양 하나하나가 빼어난 그림 같다. 미황사 대웅보전의 기둥에도 게와 물고기 등이 있는 것은 불법이 바다에서 왔음을 뜻한다.
다시 30분쯤 걷다 보면 너덜 지대가 나오고 좌선대처럼 너른 바위도 있다. 너덜 지대에서 쉬엄쉬엄 1시간 정도 더 가면 40년 전 조림한 측백나무 숲길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 도솔암이다. 천년길은 도솔암에서 마련마을로, 마련에서 다시 산길을 넘어 송호리 해수욕장을 거쳐 땅끝 사자포구에 이르러 끝을 맺는다. 도솔암에서 땅끝전망대까지 10.6㎞ 거리다.
우리는 예정대로 도솔암에서 도솔봉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경사도가 거의 없는 0.7㎞이고 20~30분이면 닿는다. 이 길은 웅장한 바위와 시원한 들녘과 바다가 조망되는 호연지기 오솔길이고 사색의 길이다. 따라서 달마산 종주산행이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거나 단순 산행조차 자신이 없다면, 평지와 다를 바 없는 이 코스만이라도 걷기를 권한다. 그것만으로도 달마산이 얼마나 매혹적인 경관을 품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체력이 된다 싶으면 당연히 종주 도전이다.
주차장에서 도솔봉 정상까지 이어진 시멘트길을 따라가면 볼썬봉에서 목적지로 삼았던 통신 안테나다. 예전에는 제주도까지 연결하는 통신사의 안테나였는데 지금은 통신시설이 지하로 매설되어 군부대가 관할하고 있다.
도솔암주차장에서 택시를 불러 미황사로 이동하는데 기사가 천천히 운전하며 해남 전반을 친절하게 설명하니 이른바 해남 강연이다. 택시기사(010-9883-3534) 가라사대 해남과 제주도의 날씨가 거의 일치한다고 한다. 마봉리약수터에도 일부러 서더니 물 한잔 마시라고 권한다. 멀리 달마산 산줄기가 바라보이는 곳에서도 사진을 찍으라며 차를 세운다. 그곳에서 바라보니 단순하면서 화려한 바위산 줄기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쭉 늘어서 있다. 평야 끝에 병풍처럼 서서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땅끝을 향해 돌격하는 용의 등골같은 암릉미를 보여 준다.
■장거리 코스 : 미황사~큰바람재~도솔봉~미황사 코스… 12~18㎞ 거리
달마산 남쪽 끝에는 도솔봉이 있고, 북쪽 끝에는 큰바람재가 있다. 이 두 곳을 잇는 것이 장거리 코스다. 거리는 9.75㎞이고 7시간이 넘게 걸린다. 물론 건각이라면 5시간도 가능하다. 미황사를 출발지로 삼는다면 종주 거리는 더 늘어난다. 미황사에서 왼쪽의 달마고도 제1코스로 가면 만나는 큰바람재에서 도솔봉으로 이동하는 총거리는 12.45㎞이고 반대로 미황사에서 도솔봉으로 올라가 큰바람재로 가는데는 15.45㎞다. 미황사에서 출발해 미황사로 원점회귀하는 거리는 18㎞가 넘는다. 구간 거리를 보면 미황사에서 큰바람재까지는 2.7㎞, 큰바람재에서 도솔봉까지는 9.75㎞, 도솔암에서 미황사까지는 5.7㎞다.
장거리 코스 중 미황사를 들머리로 삼지 않고 큰바람재에서 2㎞ 이상 아래에 위치한 송촌마을을 들머리로 삼는 코스도 있다. 다만 송촌마을에서 큰바람재까지는 돌이 많이 깔린 비탈길이다. 큰바람재에서 관음봉(434m)까지는 1.85㎞다. 관음봉 역시 해남의 동쪽 해안과 바다 건너 진도 일대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특급 조망대다.
■달마산의 또 하나 자랑은 달마고도(達摩古道)… 총거리 18㎞에 7~8시간
달마산의 또 하나 자랑은 달마고도(達摩古道)다. 미황사에서 출발해 달마산의 산자락을 따라 돌아 다시 미황사로 원점회귀하는 둘레길이다. 1~4코스까지 총 17.74㎞이고 7~8시간이 걸린다. 전체 구간 중 8㎞는 기존 길을 활용하고, 나머지 10㎞는 옛사람이 걸었던 일부 옛길을 복원해 연결했다. 구체적으로는 제1코스(2.71㎞) 미황사~큰바람재, 제2코스(4.37㎞) 큰바람재~노지랑골, 제3코스(5.63㎞) 노지랑골~몰고리재, 제4코스(5.03㎞) 몰고리재~인길~미황사다. 미황사를 기점으로 시계방향에 맞춰 1㎞ 지점마다 ‘남도 명품길’ 안내목을 설치해놓았다. 1번 안내목부터 총 17개를 확인하면 미황사로 원점회귀하게 된다.
산자락을 따라 도는 길이기에 오르내림의 변화가 그다지 심하지 않아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속도나 높이에 얽매이지 않고 명상하듯 걷는 푹신한 흙길이지만 규암 수천 개가 거대한 염주알처럼 쏟아져 있는 너덜지대도 20군데 있다. 긴 너덜 구간은 150m에 달한다. 길을 조성하면서 자연경관 훼손을 가급적 피하다보니 그 흔한 나무 데크 하나 없다. 미황사를 제외하면 화장실이 없는 점도 불편하다. 물은 미황사를 출발한 뒤 천제단 암자터와 노지랑골 갈림길에서만 구할 수 있으니 미리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도솔암으로 내려오면서 “비록 이번에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꼭 다시 찾아오리라” 홀로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