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9월 18일 밤10시20분쯤, 중국 랴오닝성의 펑톈(奉天·현 심양)역 부근에 있는 류탸오거우(柳條溝)에서 남만주철도의 일부가 폭파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선로와 침목의 일부가 파괴됐을 뿐 큰 사고는 아니었다. 관동군은 이 사건을 중국의 항일 군벌 장쉐량(장학량)의 소행이라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관동군 장교들이 본국과의 사전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꾸민 모략이었다.
이튿날 관동군은 ‘자위(自衛)’를 내세워 일제히 군사행동을 개시, 장쉐량군이 주둔하고 있는 북대영을 포격하기 시작했다. 조선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도 국경을 넘어 만주로 침공해 들어갔다. 만주사변이 시작된 것이다. 관동군이 속전속결로 펑톈·창춘(長春)에 이어 5일만에 지린성의 거의 전 지역을 점령해 들어가자 일본 본토의 내각도 사건을 확대하지 않는다는 당초의 방침을 철회하고 추인으로 돌아섰다. 정부가 군인들에게 끌려가는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다.
일본군은 11월에 소·만(蘇·滿) 국경을 이루는 동북 3성 전 지역을 장악하고 이듬해 3월 괴뢰국 만주국까지 세워가며 만주점령을 기정사실화했지만 중국은 국제연맹에 제소만 했을 뿐 적극적인 저항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당시 국제연맹 가맹국들도 영국의 금본위제 탈출과 소련 견제가 관심이었지 만주는 안중에도 없었다. 국제연맹은 소극적이나마 일본군의 철수를 권했으나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2년뒤 국제연맹을 탈퇴하며 군국주의 길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