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 1977년 9월 15일 낮 12시50분. 흥분과 감격에 찬 고상돈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본부 베이스캠프로 날아들었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 에베레스트가 15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인의 발걸음을 허용한 것이다. 산악인으로는 55번째, 국가로는 8번째 쾌거였다. 고상돈과 셰르파 펨바 노르부가 마지막 베이스캠프 C5(8500m)를 출발, 정상 공격에 나선 시각은 새벽 5시30분. 6일 전 박상렬 대원이 정상 공격을 시도했으나 악천후와 산소부족으로 정상을 100m 남겨두고 포기했던 터라 고상돈의 어깨는 더욱 무거웠다. 오르고 또 올랐다.
무의식적으로 앞 만 향해 가고 있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셰르파의 외침이 들렸다. “거기가 정상이다!” 불현듯 고상돈의 눈에 히말라야 영봉들이 내려다 보였다. 마침내 정상에 선 것이다. 김영도 대장을 비롯한 18명 대원들의 피땀어린 5년간의 훈련과 극한의 사투가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고, 1962년 9월 한국 원정대가 에베레스트 문을 두드린 때로부터 15년만에 맞는 감격이었다.
고상돈은 먼저 사진을 찍은 뒤 태극기를 꽂고 성경책과 훈련 중 희생된 3명의 대원 사진을 묻었다. 그러나 고상돈의 감격은 2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1979년 5월 29일 알래스카 매킨리봉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길에 6000m 지점에서 실족, 600m 빙벽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한라산 기슭에서 태어나 산에서 살다 산에서 죽은 31년의 짧은 인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