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존 바에즈, 워싱턴 집회에서 노래 불러

1963년 8월 28일의 워싱턴 집회에는 밥 딜런 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61년 4월에 처음 만난 이후 자신의 숱한 콘서트를 통해 밥 딜런을 세상에 알리고 또 그와 함께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온 여성 포크가수 존 바에즈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둘은 1941년 동갑내기였고 한때는 연인 관계였으며 당대 포크음악계를 견인한 두 중심축이었다. 포크 음악은 밥 딜런을 낳으면서 절정기에 달했지만 한편으로는 바에즈를 통해서 대중 속을 파고들었다.

바에즈는 미국에서 멕시코인 물리학자 아버지와 스코틀랜드인 희곡작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대학시절 커피하우스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의 꿈을 키우던 바에즈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1959년 7월 미국의 작은 마을 뉴포트에서 열린 제1회 ‘뉴포트 포크음악 페스티벌’이었다. 투명한 목소리와 청초한 스타일의 그의 등장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곧 대중에 알려졌다. 1961년 첫 전국 콘서트를 통해 반인종차별주의를 강하게 부각시키면서 1962년 11월 23일자 타임지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했다. 워싱턴 집회도 그의 음악이 지향하는 바가 어딘지를 다시한번 분명하게 확인시켜준 자리였다. 행진에 앞서 바에즈는 청중을 향해 ‘We shall overcome’을 불렀다. 그리고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서명하고 흑인들의 공민권을 정부에 촉구했다. 가사를 통해 민중의 서러움과 복잡한 시대상을 반영했던 포크 가수들의 이러한 적극적인 움직임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더 나아가 이날의 집회는 후에 팝 스타들의 활발한 사회운동과 정치적 활동의 밑거름이 됐다.

이후에도 바에즈는 베트남전 전비로 쓰일 납세거부운동과 징집거부운동에 참여하며 대(對) 사회적 관심사를 넓혀나갔다. 1967년 일본을 방문, 그해를 일본 포크의 원년으로 만든 것도 바에즈였다. 1969년 우드 스톡에도 참가하고 1971년에는 사코와 반제티 사건을 테마로 한 앨범을 발표하는 등 그의 노래운동은 1960~1970년대를 관통하며 시대와 같이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곡으로는 ‘쿰바야’ ‘돈나 돈나’ ‘숲속을 흐르는 강(The river in the pines)’ 등이 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