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4월에 창설됐다고 해서 ‘684부대’로 불렸다. 작전명은 ‘오소리’였다. 그해 1월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1·21사태’가 창설의 계기였다. 분노한 박정희는 보복 조치로 특수부대 창설을 명령했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명을 따랐다. 인원은 남파 무장공비와 똑같은 31명으로 구성했다. 훈련장소는 인천에서 20㎞ 떨어진 실미도였다. 훈련 목적은 북한 주석궁 침투였다.
독도법·산악훈련·폭파기술 등을 익혔고 체포되면 죽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7명이나 숨질 정도로 혹독한 훈련이었다. 그러나 실전 명령만 기다리며 묵묵히 참아온 3개월 간의 훈련이 끝나도 작전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대우도 예전같지 않아 쌀밥은 보리밥으로, 고깃국은 단무지국으로 변해갔다. 그래도 3년을 더 기다렸다. 그 사이 중앙정보부장은 이후락으로 바뀌었고, 남북 대치 국면도 화해 분위기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어느덧 실미도 특수부대의 존재가치도 사라졌다. 684부대는 버려지고 있었다.
1971년 8월 23일 새벽 6시, 실미도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특수부대원들이 들고일어선 것이다. 23명의 기간요원 중 6명 만이 살았을 뿐, 17명이 현장에서 사살되거나 익사했다. 23명의 특수부대원들은 3년4개월 만에 실미도를 빠져나왔다. 목적지는 청와대. 인천 송도에서 버스를 탈취, 서울로 진입하면서 군경과의 충돌로 2명이 죽었다. 다수의 민간인과 군경도 총격전에 희생됐다. 서울은 발칵 뒤집혔고 시민들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마침내 서울 대방동에까지 이르렀으나 버스가 가로수에 부딪치자 이들은 죽음을 선택한다. 수류탄으로 자폭한 것이다. 17명이 현장에서 죽었고 부상한 4명은 1972년 3월 극비리에 총살됐다. 남북대치가 첨예했던 1970년대의 비극적인 자화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