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하와이 주(州) 승격과 ‘하와이 근성’ 시비

하와이가 백인 세계에 알려진 것은 1778년 제임스 쿡이 이 섬을 처음 발견해 자신을 후원한 영국 샌드위치 백작의 이름을 따 ‘샌드위치 제도’라고 명명하면서였다. 이후 8대에 걸친 카메하메하 왕조가 하와이를 지배했으나 1893년 군주제가 전복되고 ‘하와이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하와이는 더 이상 원주민의 땅이 아니었다. 1898년 하와이공화국과 미국이 합병에 동의하고 1900년 미국의 영토로 편입됐으나 속령이었기 때문에 적자라기보다는 서자같은 존재였다. 하와이가 미국 성조기의 50번째 별로 당당하게 자리잡기까지에는 59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1959년 3월 18일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하와이를 주(州)로 승격시키는 법안에 서명하고, 그 해 8월 21일 주 승격을 선포함으로써 하와이는 마침내 미국의 50번째 주가 됐다. 50개의 별이 달린 성조기는 1960년 독립기념일부터 미 전역에 게양되기 시작했다. 당시 하와이 인구는 56만. 백인은 23%였을 뿐 원주민 및 혼혈인이 18%, 일본계가 35%를 차지해 백인들의 땅은 아니었다.

그 무렵, 하와이가 환영 일색이었던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하와이’ 문제로 시끌시끌했다. 월간지 ‘야화(夜話)’ 1959년 7월호에 실린, 호남 사람들을 비하하는 글 때문이었다. ‘소위 하와이 근성(根性) 시비-전라도 개땅쇠(하와이 교포론) 간휼(奸譎)과 배신의 표상으로서’라는 제목의 잡지 기사는 앞머리부터 ‘전라도놈’이라는 욕설로 시작했다. 특히 전라도의 한 고교 교사가 제자를 능욕했다는 기사 속 내용은 호남 사람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 전남·북 도의원들이 규탄결의안을 내고 호남 출신의 국회의원들까지 공식적으로 문제 삼자 정부는 잡지에 판매금지령을 내렸다.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광주시민 1만 여 명은 규탄대회를 열어 잡지를 성토했다.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는 성명서를 발표, “잘못을 잘못 처리할 때는 더 큰 잘못이 된다”며 재판부에 경고했다. 결국 편집인 이종렬과 필자 조영암은 구속돼 1960년 11월에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미 호남인들의 자존심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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