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손기정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1936년 8월 9일, 베를린 하늘에 일장기가 올라가고 기미가요가 울려퍼질 때 시상대 위에 선 24세의 조선청년 손기정은 물끄러미 땅만 내려다보았다. 훗날 그가 말했듯 “우승선수 나라의 국기가 올라가지 않고 국가가 연주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나서지 않았을” 그 올림픽에서 우승했다는 자괴감 탓이었을까. 손기정은 월계수관 속에 눈을 감추고 가슴에 달린 일장기는 월계수로 가렸다. 손기정은 금메달리스트들이 사인하는 방명록에도 한글로 ‘손긔정’이라고 뚜렷이 적어 일본인 ‘기테이 손’이 되기를 거부했다.

1912년 신의주에서 태어난 손기정은 젊어서 중국 단동의 회사에 출퇴근하기 위해 신의주~압록강철교~단동에 이르는 20여 리길을 아침저녁으로 달릴만큼 타고난 강골에 노력파였다. 21세 때인 1933년 출전한 동아마라톤에서 당당히 우승하면서 일약 조선 마라톤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손기정은 같은해 조선신궁대회에서 2시간29분34초를 기록, ‘마의 30분’ 벽을 깨뜨리고, 1935년 전조선 마라톤대회(4월)와 메이지신궁대회(11월)에서는 각각 2시간24분51초의 비공인 세계 최고기록과 2시간26분42초의 공인 세계 최고기록까지 수립, 일본 육상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베를린올림픽 당시 유력한 우승후보는 아르헨티나의 자바라였다. 그는 중반 페이스 오버로 30㎞ 지점에서 기권하지만 이는 손기정이 끈질기게 따라붙어 빚어낸 결과였다. 30㎞ 이후 선두로 나선 손기정은 영국의 하퍼와 치열한 레이스를 펼친 끝에 2시간29분19초2라는 올림픽 신기록을 수립하며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한국인이 따낸 첫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은 제국주의 폭압에 눌린 조선 민중에게 통렬한 감격과 민족적 희망을 안겨주었다. 손기정과 함께 출전한 남승룡은, 2위 하퍼에 불과 19초 뒤진 2시간31분42초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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