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수양대군, 단종 폐위하고 세조에 즉위

단종(1441.7~1457.10)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어머니(세자빈 권씨=현덕왕후)가 산후병으로 숨지고, 11살이던 1452년 5월 왕위에 올라서도 삼촌에게 3년 만에 죽임을 당하는 등 조선 역사상 가장 불행한 임금으로 꼽힌다. 단종은 임금이 되기 전까지는 할아버지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7세 때 왕세손, 9세 때 왕세자로 책봉되어 나름대로 순탄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세종이 1450년 죽고 아버지 문종마저 즉위 2년 2개월 만인 1452년 5월에 죽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기구한 운명 속으로 내몰렸다.

단종이 6대 국왕으로 즉위했을 때 나이는 11세였다. 보통은 나이가 어린 왕이 즉위하면 대왕대비(전전 임금의 왕비)나 왕대비(전 임금의 왕비)가 수렴청정을 하며 어린 왕을 보필했으나 불행히도 단종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할머니인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는 세종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인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고 하루 만에 숨졌기 때문이다. 믿고 의지할 인물은 ‘고아를 지키라’는 문종의 고명을 받은 우의정 황보인, 좌의정 김종서 등이었다.

문제는 아버지(문종)의 동생이면서 단종의 삼촌인 수양대군의 권력욕이었다. 수양대군이 1453년 10월 이른바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황보인 등 100여 명의 신하들과 자신의 친동생 안평대군을 살해하고 실권을 장악한 뒤부터 단종은 명목상의 왕으로 근근이 왕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수양대군의 부하들이 단종에게 ‘숙부에게 양위하라’고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수양대군도 단종의 측근들을 유배시키며 더욱 강하게 목을 조여오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1455년 윤 6월 11일, 즉위 3년 만에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형식적인 자리에 불과한 상왕으로 물러났다. 그 자리를 차지한 수양대군은 7대 임금 세조가 됐다.

상왕으로 쫓겨난 단종을 위해 과거 세종과 문종을 보필했던 성삼문·박팽년 등 사육신이 1456년 6월 상왕을 복위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결국 그들의 목숨은 물론 단종의 수명까지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단종은 1457년 6월, 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노산군으로 강봉 당해 강원도 영월 땅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남·북 3면이 강줄기로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벼랑이 솟아 있어 사실상 육지 속의 고도이자 천혜의 감옥이었다.

2개월 후 이곳에 큰 홍수가 닥쳤을 때 단종은 영월읍내 객사 관풍헌으로 보내졌다가 그해 12월 사약을 받고 숨졌다. 기록을 종합하면 사약을 거부했다가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영월의 호장 엄홍도가 강물에 뿌려진 시신을 몰래 수습해 묻은 곳이 지금의 장릉이다. 장릉은 조선 임금 중 유일하게 경기도 밖에 있는 능이다.

단종은 살해되고 224년이 지난 1681년(숙종 7년) 대군으로 복권되었다가 1698년(숙종 24년) 단종 임금으로 복권되었다. 사육신과 김종서·황보인 등의 관직도 영조 때까지 모두 복구되었고 엄흥도에겐 순조 때 공조판서 벼슬이 내려졌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