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6월 26일,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추구했던 알렉산드르 두브체크가 체코 공산당으로부터 당적을 박탈당함으로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1968년 ‘프라하의 봄’도 역사 속에 묻혔다. 두부체크 개인에게도 ‘실패한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두브체크가 역사 전면에 부상한 것은 1968년 1월. 1967년부터 불붙은 당 노선 경쟁에서 보수파 당관료를 물리치고 당 제1서기에 선출되면서였다. 그는 곧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한 ‘제3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해 당의 권력독점을 비판하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등 체코 전역에 자유화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언론은 전보다 더 큰 자유를 누렸고 스탈린 시대에 숙청된 사람들은 복권됐다. 이러한 움직임이 소련의 눈에 동구권을 붕괴시키는 ‘반혁명’으로 비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체코의 자유화는 “절대 용인할 수 없다”며 경고했지만 이미 자유를 만끽해 본 체코인들의 태도는 완강했다.
1968년 8월 20일, 소련군을 위시한 20만 명의 바르샤바 조약기구 군인들이 탱크를 앞세워 체코 국경을 넘자 국민들은 온 몸으로 저항했다. 작가들도 국제 여론에 호소했으나 세계는 냉담했고 침묵했다. 결국 ‘프라하의 봄’은 침략자 군홧발에 짓밟혀 파국을 맞았고, 소련에 연행된 두브체크는 자신의 행동이 반동적이었음을 시인해야 했다. 1969년 4월 제1서기에서 해임되고 1970년 1월 터키 대사로 전출됐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그를 기다린 것은 고향에서의 산림노동자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