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이후락 비밀 방북해 김일성 만나

적대적 관계였던 미국과 중국이 이른바 ‘핑퐁 외교’를 통해 중국 베이징에서 화해의 축배를 들며 양국 간 거리를 서로 좁혀가고 있던 1972년. 한반도에도 데탕트(긴장 완화) 바람이 불었다. 미·중간의 밀사가 키신저였다면 한국의 밀사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이후락이 정홍진 대한적십자사 과장을 대동하고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한 것은 1972년 5월 2일이었다. 출발에 앞서 이후락은 만일을 대비해 청산가리를 챙겼다. 그만큼 긴장 관계가 첨예하던 때였다. 이후락은 5월 5일까지 나흘 간 평양에 머물며 김일성과 두 차례 면담을 갖고 얽혀있는 실타래를 풀어보려했다. 김일성도 “과거는 과거고 다시는 남침하지 않겠다”며 ‘남침’을 시인했다.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1·21사태는 내가 한 짓이 아니라”며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김일성은 박 대통령의 의중을 확인하기 위해 5월 29일 박성철 제2부수상을 서울로 보냈다.

이후락의 방북에 앞서 남북 간 비밀회담은 1971년 8월 12일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남북이산가족찾기’를 제안하고 북한이 이에 동의하면서 첫 단추가 꿰어졌다. 11월 19일, 판문점에서 가진 제9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에서 정홍진이 북측에 비밀접촉을 제의함으로써 시작된 11차례의 비밀접촉은 3월 28일 정홍진을 북한으로 보내 이후락의 방북을 합의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이후락·박성철의 상호방문으로 최소한의 신뢰를 쌓았다고 판단한 남북한은 마침내 7월 4일, 이후락과 박성철이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7·4 남북공동성명’을 동시에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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