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에 선출

1969년 2월3일, 야세르 아라파트가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새 얼굴이 됐다. 이날 카이로에서 개최된 ‘파타(팔레스타인 민족해방운동)’ 민족평의회가 그를 PLO 집행위 의장에 선출한 것이다. 아라파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68년 3월의 ‘카라메 전투’ 때였다. 그가 결성한 게릴라 조직 ‘파타’가 무장투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자 이스라엘은 전차부대를 앞세워 파타가 점령하고 있는 요르단의 국경도시 카라메에 공격을 가했다. 아라파트는 파타 대원 450명으로 이스라엘군 1만5000명을 대파함으로써 일거에 그의 존재를 아랍세계에 강하게 인식시켰다. 아랍세계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아랍이 거둔 최초의 승리에 환호했고 그는 여세를 몰아 PLO의 새 의장에 선출됐다.

그러나 요르단 암만에서 쫓겨나 레바논으로 본거지를 옮기는 등 연이은 좌절은 그에게 인식변화와 노선변경을 요구했다. 1974년 PLO가 아랍 정상회담에서 유일한 합법기구로 승인받고 유엔의 옵서버 자격을 얻게 되자 아라파트는 무장투쟁을 자제하고 국제무대에서 대(對)이스라엘 외교전을 강화해나갔다. 그러나 19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간에 체결된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이 시나이 반도는 이집트에 반환하면서도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에 돌려주지 않는 것으로 결론짓자 이에 실망한 아라파트와 PLO는 이스라엘에 맹공격을 퍼부었다. 이 때문에 1982년 8월 이스라엘이 PLO의 근거지 레바논을 공격했고 아라파트는 베이루트에서 튀니지로 피신해야했다.

이때 지도자로서의 입지가 한때 흔들리긴 했으나 다시 지도력을 회복해 1988년 11월에는 알제리에서 독립국임을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추대됐다. 1993년 9월 13일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에 서명함으로써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찾아오는 듯 했으나 잠시 뿐이었다. 계속된 갈등 속에서도 지도력은 유지했으나 예전같지는 않았다. 2004년 11월11일 향년 75세로 숨졌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