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맞아 세계 핵물리학계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지만 누구도 종착점을 알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엔리코 페르미가 느린 중성자에 의해 일어나는 핵반응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아 기뻐하고 있을 무렵인 1938년 12월, 독일의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우라늄의 원자핵 분열을 성공시켜 비로소 종착점이 보이는 듯했다. 페르미는 노벨상을 받고 현지에서 바로 미국으로 망명했다. 독일에서의 핵분열 성공 소식은 세계 물리학계를 놀라게 했고 페르미는 이 소식을 미국에서 들었다.
핵분열은 하나의 중성자가 우라늄의 원자핵과 충돌해 핵을 둘로 쪼개는 현상이다. 이때 방출되는 평균 2.5개의 또 다른 중성자가 다른 원자핵과 충돌, 연이어 핵분열을 일으키는 이 현상이야말로 핵의 연쇄반응을 가능케 하는 열쇠였다. 독일이 세계최초로 핵분열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세계 과학자들, 특히 나치즘과 파시즘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물리학자들은 긴장시켰다. 늦긴 했지만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있기 하루 전인 1941년 12월 6일, 루스벨트 대통령이 20억 달러가 소요되는 ‘맨해튼 계획’을 승인하면서 원자폭탄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1942년 3월, 미 정부는 연쇄반응에 관한 연구를 ‘야금연구소’라는 암호명 아래 통합시켰다. 연구는 시카고대학에서 비밀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페르미는 오늘날 원자로라 불리는 ‘파일1호기’(CP-1)를 시카고대 축구장 관람석 아래 스쿼시 경기장에 설치했다. 파일은 정제한 흑연 400톤, 산화우라늄 40톤, 그리고 우라늄 금속 6톤을 이용해 57층까지 쌓아올려졌다. 우라늄 덩어리만 2만2000개에 달하고, 흑연은 연쇄반응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감속제로 쓰였다.
1942년 12월 2일 오후 2시20분, 페르미는 비로소 핵분열의 연쇄반응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인류가 새롭게 얻은 에너지원이었고, 인류역사상 최초로 점화한 ‘원자 불’이었다. 연쇄반응이 28분 만에 중단되고 이때 얻은 에너지가 0.5와트에 불과했지만 제어된 연쇄반응을 성공시켰다는 것은 종착점에 거의 다가왔음을 의미했다. 동료 레오 실라드는 페르미와 악수하며 말했다. “오늘은 인류역사상 비운의 날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