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중국 여성혁명가 추근(秋瑾) 처형

어려서부터 중국 여성을 옥죈 전족을 부정하고 남여차별을 인정하기 싫어했던 추진(秋瑾)의 눈 앞에 펼쳐진 1900년의 의화단 사건은 실로 충격이었다. 청조를 짓밟은 열강들에는 충격과 굴욕감을 느꼈고, 침략에는 무력하면서도 민중에게는 고압적인 청조에는 분노가 솟았다. 어느덧 27세, 결혼도 했고 1남1녀의 어머니였지만 선진문명에 목말라한 추진은 1904년 가족만 남겨둔 채 홀로 일본으로 떠났다. 사격연습도 하고 폭탄제조법도 익히며 혁명을 준비하던 중, 쑨원(孫文)이 일본에서 ‘중국혁명동맹회’를 조직하자 자신도 동맹회에 가입, 고향인 저장(浙江)성 분회장에 선출됐다.

그러나 청조의 요청으로 일본 정부가 청국 유학생들을 단속하자 추진은 1906년 2000여 명의 유학생들과 함께 귀국선에 몸을 실었다. 여성혁명가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잡지를 창간하고 여권신장을 부르짖었다. 비밀결사에 가입하고 혁명의 아지트인 대통사범학교를 운영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러나 거사를 함께 도모하던 한 동지가 예고도 없이 안후이(安徽)성에서 먼저 봉기, 실패하는 바람에 추진도 곧 체포돼 7월 15일, 뜻도 제대로 펴보지 못한 채 저장성 쉬안팅커우(軒亭口)에서 처형됐다. 추풍추우수쇄인(秋風秋雨愁殺人·가을바람 가을비가 사람을 못 견디게 한다), 처형되기 전 그가 남긴 마지막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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