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빌리 브란트, 비서 간첩사건으로 총리 사임

 

“대통령 각하. 본인은 기욤 간첩사건과 관련해 직무 태만에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습니다.” 1974년 5월 6일, 훗날 ‘독일 통일의 아버지’로 불리게 될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취임 5년 만에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다. 12일 전, 자신의 비서 귄터 기욤이 18년간 암약해온 슈타지(동독의 정보기관)의 스파이였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브란트가 기욤 때문에 물러난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미심쩍은 몇 가지 일들로 사임 배경이 명쾌하지는 않다. 사임 며칠 후부터 돌기 시작한 “궁중음모의 제물” “기욤은 궁중 모사꾼들에게 하늘이 때맞춰 내려준 선물”이라는 소문이 그랬다. 브란트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닌데 간첩사건이라는 민감한 시기에 여자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도 그랬다. “브란트의 전용열차 객실에 금발의 여인이 들락거렸다”는 등 스캔들에 불을 지핀 것은 보수신문들이었다.

브란트는 한때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측근에게 “배신당했다”는 말을 전하고는 사임을 결정했다. 기욤 사건에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이미 1년 전부터 기욤이 스파이라는 사실이 포착돼 내사에 들어갔으나 당내 주요 인사들이 아직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며 좀더 기다려 보자고 조언하는 바람에 기욤의 스파이 행위가 1년 더 연장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동독에서 초등학교만 나온 기욤이 난민 대열에 끼어 서독으로 넘어온 것은 1956년이었다. 사민당에 입당하고 성실성과 치밀성을 인정받아 1970년 총리실에 입성했다. “고등교육을 받지 않았고 신원조회도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없진 않았으나 유야무야되어 1973년 브란트의 비서로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동독에 동방정책을 펼쳐온 브란트는 그에게는 우군이었다. 1972년 4월, 브란트에 대한 불신임투표 때 의원들을 매수해 근소한 차로 부결시킨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결국 브란트를 낙마시키는 실책을 범했으니 결과적으로 무의미한 승리를 뜻하는 ‘피로스의 승리’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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