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부자들은 생전에 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각종 교육사업, 사회사업 등에 거금을 기부해 온 당대 최고의 자선사업가였다. 공공도서관을 3000여 개나 지어 헌납했고, 카네기 멜론대의 전신인 카네기공과대도 설립했다. 자선사업이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901년 2월 25일,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카네기철강회사’를 J.P.모건에게 4억9200만 달러에 매각한 뒤부터였다. 당시 일본의 1년 예산이 1억3000만 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인생의 전반부는 부를 획득하는 시기이고 후반부는 부를 분배하는 시기”라는 카네기의 지론대로 매각자금은 사회를 위해 쓰여졌다. 1902년 1월 29일, 2500만 달러의 사재를 털어 설립한 ‘카네기협회’는 20세기 기부문화의 상징이었다. 1904년 4월 법인조직으로 발전한 카네기협회는 특히 과학·문학·미술 분야에 지원을 아끼지 않아 협회가 띄운 카네기호는 항해지도의 숱한 오류를 고쳤고, 협회가 세운 천문대는 180여개의 별을 발견했다. 이후에도 카네기교육진흥재단(1905년)에 2900만 달러, 카네기국제평화재단(1910년)에 100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그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았다.
1835년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베틀직공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온 카네기가 1872년에 처음 철강회사를 차려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기까지에는 그역시 고통스러운 터널을 지나야 했다. 카네기 소유의 모든 회사가 ‘카네기철강회사’로 통합(1889년)됐을 때 카네기는 이미 미국 철강업계의 최고강자였다. 미국의 철강 생산량이 영국을 능가하게 된 것도 카네기의 공로였다. 카네기는 평소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정말 나쁘다”고 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부자로 죽었다. 마음의 부자로. 1919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