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월 27일, ‘20세기의 치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됐을 때, 소련군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7000㎏이나 되는 머리가락, 사람의 골분(骨紛),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의치와 안경테였다. 5㎏으로 1000명을 살상할 수 있는 ‘사이클론B’ 가스가 사용된 흔적도 발견됐다. 그러나 소련군이 찾아낸 것은 극히 일부였을 뿐, 대부분은 이미 독일군에 의해 파괴된 상태였다. 가스실 처형은 1944년 11월부터 중단됐고, 죄수들도 5000여 명의 환자들만 남기고 걸을 수 있는 6만 명은 모두 독일로 옮겨졌다. 아우슈비츠에 있는 3개 수용소 중 소련군이 해방시킨 수용소는 독일군이 미처 파괴하지 못하고 황급히 떠난 곳이었고, 이보다 20배나 큰 인근의 비르케나우 수용소는 독일군의 파괴로 흔적만 남아있었다.
히믈러의 지시로 건설된 아우슈비츠에서 가스학살이 시작된 것은 1941년 9월부터였고, 유대인 절멸이 결정된 1942년 1월부터는 이른바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가 자행됐다. 이곳에서 처형된 사람은 대부분이 유럽 각지에서 끌려온 유대인이었지만 집시, 여호와의증인 신도, 동성연애자 등도 포함됐다. 안네 프랑크도 1944년 9월 이곳으로 들어와 죽임을 당했다. 150만 명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떼죽음당한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교수형에 처해진 사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마지막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