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남도 답사 두 번째 길] 전남 진도의 뜻은 ‘보배(珍)의 섬(島)’… 그 중에서도 운림산방 첨찰산 세방낙조 동석산 남망산은 보배 중의 보배

↑ 운림산방 전경. 앞이 운림지(연못)이고 뒤는 첨찰산이다. 가운데 건물은 소치가 거주한 운림산방이다.

 

by 김지지

 

☞ 둘러본 곳 : 운림산방 소치기념관 첨찰산 팽목항 동석산 세방낙조 접도 남망산

 

전남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건너 진도 땅을 밟은 것은 봄기운이 완연하던 2019년 4월 29일이었다. 강진처럼 진도 땅도 처음이다. 이 좁은 나라에서 가보지 못한 곳이 많으니 이 땅의 지신(地神)께 죄송할 따름이다. 친하게 지내는 회사 고문변호사의 고향이 진도여서 진도에 간다고 했더니 “뭐 볼게 있다고 가느냐”며 반문한다. 그러나 진도는 기대했던 것 이상의 감동을 내게 선물했다. 진도대교를 건너면 왼쪽 높은 언덕에 위압적인 건물이 우뚝 서 있다. 명량해전의 현장 울돌목을 내려다볼 수 있는 녹진전망대다. 그곳에서 진도대교를 내려다보면 울돌목 해류가 얼마나 빠른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녹진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진도대교

 

전망대에서 내려와 진도 남쪽행 18번 국도를 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한쪽에 ‘대명해양리조트’ 방향을 가리키는 대형 입간판이 보였다. 하룻밤을 해결할 숙소를 정하지 않은 터여서 회사 콘도 담당에게 전화를 걸어 “진도의 대명해양리조트는 처음 들어보는데 혹시 오늘밤 이곳에서 숙박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2019년 7월 문을 열 예정이란다.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준공 후에도 객실을 계속 늘려 2022년 쯤이면 국내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콘도가 개관하면 진도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이다. 더불어 진도 가는 길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해남의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진도에서 먼저 찾아간 곳은 운림산방이다. 이곳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이미 상세하게 알고 있는데다 이곳의 랜드마크 격인 연못(운림지)과 뒷산(첨찰산)의 멋진 사진을 워낙 많이 보아온 터라 실제 모습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운림산방은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1809~1892)이 말년 여생을 보낸 화실이다. 뒤로는 온화한 모습의 첨찰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앞으로는 연못과 정원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다. 건물은 운림산방 말고도 소치의 초가집 생가, 소치기념관, 진도역사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운림산방은 화실과 공원 2개의 의미가 있다.

운림산방

 

진도에서 먼저 달려간 곳은 평소 궁금했던 운림산방

소치기념관은 허련에서 시작하는 허씨 5대 화가들의 실물 그림을 상설 전시하는 곳이다. 허련(1대), 허형(2대), 허건·허림(3대), 허문(4대) 순서다. 화업(畫業)이 한 집안에서 5대까지 이어진다는 게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다. 호남 서화계의 또 하나 거봉으로 추앙받는 허백련(1891~1977)도 이 집안 출신이라니 더욱 그렇다. 전시관 안은 세련되게 잘 꾸며져있다. 그림들에서도 일세를 풍미한 대가들의 화풍이 잘 드러난다.

문제는 내 안목이다. 진도에 가기 며칠 전 서울 삼청동 현대갤러리에서 감상했던 한국화가 이상범·변관식의 그림이 소치 그림보다 더 개성있거나 안정감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진도에 다녀온 후 갔던 서울 종로 뒷골목의 허름한 종로횟집 방에 걸려있는 컬러풀한 한국화 그림이 허련은 물론 이상범·변관식의 그림보다 더 멋지게 보이니 세 대가들께 송구스러울 뿐이다. 어쩌랴 내 안목이 이 정도인 것을. 그래도 허씨 5대 화가들의 실물을 직접 마주한 것은 행복한 경험이었다.

소치기념관 내부

 

운림지(연지)는 한 면 길이가 35m다. 평소 사진을 보고 규모를 크게 상상해왔던 터라 생각보다는 작게 보였다. 그러나 양보다는 질, 규모보다는 짜임새를 중요시 여긴다면 ‘명품 연못’임에 틀림 없다. 연못 가운데에는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둥근 섬이 있고 소치가 심었다는 커다란 배롱나무 한 그루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배롱나무는 꽃이 백일 동안 피어 있는 것처럼 보여 ‘나무 백일홍’으로도 불리지만 사실은 7~ 9월까지 작은 꽃들이 연속해서 피고 지는 것이다. 또 어느 정도 성장하면 거친 겉껍질을 벗고 반질반질한 얇은 껍질인 채로 겨울을 난다. 사찰이나 서원에 배롱나무가 많은 까닭은 스님들과 유생들이 ‘마음의 욕망을 다 벗어버리고 공부에 정진하라’는 뜻이라고 전해진다.

소치 허련에 대해서는 ‘지지앤지’ 사이트에 있는 관련 글을 링크한다.

☞ 소치 허련과 운림산방

 

훗날 후회할 것 같아 운림산방 뒤 첨찰산 올라가

운림산방을 감싸고 있는 산은 첨찰산(485m)이다. 진도에 가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산이나 막상 가까이서 보니 수려하고 편안하다. 게다가 진도 최고봉이어서 올라가지 않으면 훗날 후회할 것 같아 등산을 시도했다. 다만 계획에 없던 산이라 운림산방 바로 옆 울창한 수림 속의 쌍계사를 거쳐 완만하게 이어지는 첨찰산 허리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입구에서부터 허리까지는 1.5㎞ 정도이고, 정상까지는 2.5~3㎞ 거리다.

쌍계사는 진도 내 사찰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지리산의 쌍계사처럼 절 양쪽으로 하천이 흘러 쌍계사 이름이 붙여졌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해남 대흥사의 말사로 857년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대웅전의 건립 연대는 1982년 대웅전의 지붕을 보수할 때 발견된 상량문의 연대가 강희 36년 즉 숙종 23년이란 기록이 나와 1697년에 건립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년)를 이곳에서 찍었다. 영화 속 뱃놀이 장면은 운림산방 연못에서 촬영했다. 해탈문에 걸려 있는 ‘첨찰산 쌍계사(尖察山 雙溪寺)’ 현판은 유명 서예가 김응현(1927~2007)이 썼다.

첨찰산 쌍계사

 

초입부터 눈부신 연초록의 울창한 수목이 이어져 정상까지 욕심을 냈다. 알고보니 첨찰산은 평범한 산이 아니었다. 상록수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원시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초입의 팻말을 보니 입구(주차장)에서 삼선암 약수터까지 1.3㎞, 다시 0.5㎞를 오르면 넓적바위다. 정상에서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봉수대(9×8.5m)가 진도 전역을 살피고 있다. 정상에서 하산길은 넓적바위까지 긴 코스(1.2㎞)를 이용했다.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다녀오는데 3시간이 걸렸다. 내려와보니 오전에 첨찰산을 감싸고 있던 운무가 모두 사라지고 하늘이 열려있다. 날씨도 쾌청했다. 사진이 잘 나오겠다 싶어 다시 운림산방 공원 안으로 들어가 멋드러진 운림산방과 첨찰산을 카메라에 담았다. 평소 사진으로 보아온 그 모습 그대로였다.

기대하지도 않은 첨찰산의 속살을 본 것에 감사하며 진도읍으로 향했다. 그곳에 가야 가성비가 좋은 숙박지를 찾을 수 있어서다. 진도읍의 건물은 강진읍과 해남읍에 비해 번듯하고 적당히 깔끔했다. 4~5만원에 투숙할 수 있는 숙소도 적지 않았다. 이곳 경기가 좋아서인지 강진읍이나 해남읍에 비해 유흥주점도 눈에 많이 띄었다.

첨찰산 숲

 

세월호 침몰 초기에는 모든 국민이 한마음으로 슬퍼하고 아파했는데

진도 둘째날(4월 30일), 진도 남쪽의 팽목항으로 차를 몰았다. 그곳은 지난 5년 동안 언론에 숱하게 오르내려 진도에 가면 반드시 찾아가고 싶었던 1순위 장소였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방송과 신문에서 익히 보아온 팽목항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횅댕그렁했다. 방파제 옆 널찍한 평지에는 임시건물로 만든 ‘세월호 팽목기억관’만 덩그렇다. 지키는 이도 방문하는 이도 없다.

세월호 팽목기억관

 

건물 안에는 세월호 형상의 제단이 있다. 제단 위에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졸린 눈으로 방문객을 맞고 있다. 제단 위 벽에 고정된 VTR에서는 숨진 아이들의 얼굴 사진이 하나둘 지나간다. 구석에는 수습되지 않은 5명 아이들의 앳된 얼굴 사진이 세월호 사건을 상징하는 대형 노란 리본 아래에 붙어 있다. 길다란 벽에는 봄꽃처럼 아름다웠던 단원고 아이들이 수학여행 가서 반별로 찍은 단체사진이 붙어있다.

기억관을 나와 방파제로 갔다. 떠나간 아이들을 추념하거나 정치적 분노를 공유하려는 현수막과 노란색 리본들이 방파제 양쪽에 쳐진 펜스에 빼곡이 걸려 있다. 5년 전 가족들은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사고현장을 망연자실 바라보며 가슴을 쥐어짰을 것이다. 방파제 끝의 등대에는 붉은 색 바탕에 대형 노란 리본이 그려져 있고 등대 옆에는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설치했던 ‘하늘나라 우체통’이 있다. 등대 앞으로는 대형 선박들이 무심하게 지나갔다.

팽목항 방파제

 

안타까운 것은 국민 모두의 가슴을 그토록 짓눌렀던 세월호의 슬픔과 아픔이 지금은 국민 각각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5년 전 사고가 났을 때만 해도 안전불감증과 책임의식, 탐욕과 이기심을 너나없이 반성했으나 그후 정치권이 세월호 침몰을 정치적 적폐의 상징으로 부각·이용하면서 세월호를 대하는 국민들의 반응이 둘로 갈라져 더욱 안타깝다.

 

동석산, 야트막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강렬해

오후 목적지는 진도 서쪽의 동석산(219m)이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멀리서 바라본 인상은 강렬하다. 그냥 큰 한덩이의 바위같다. 전북 진안의 마이산처럼 산 전체가 기묘한 모습의 바위산이어서 서울을 떠날 때부터 궁금했다. 천종사 부근 주차장을 들머리로 삼아 세방낙조 전망대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거리는 5.5㎞이지만 바위지대를 우회해 오르내리기 때문에 3~4시간이 소요된다.

들머리에서 정상까지는 1㎞ 밖에 안되는 짧은 거리다. 500m 정도의 급경사를 오르니 동석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암릉 구간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칼날 바위 능선을 탔다. 능선 옆은 낭떠러지이지만 위험구간은 피해갈 수 있도록 우회로를 잘 조성해놓았다. 그래도 등산 초보가 오르기에는 다소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도 정상을 200m 앞두고 포기했다. 내 경우에서 보듯 가파른 암릉을 가로질러야 하는 동석산 산행은 분명 초보자에게는 버겁다. 물론 내 경우는 홀로 산행해야 하는 점과 고소공포증이 작용했다. 마음 속으로 “I will back!”을 다짐하며 내려왔다.

동석산 암릉

 

세방낙조는 한반도 최남단 제일의 낙조 전망지

동석산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는 찝찝한 기분 속에서 낙조가 그렇게 멋지다는 세방낙조 전망대로 차를 몰았다. 동석산 입구에서 801번 지방도를 타고 서쪽 해안가로 가다보면 나타나는 ‘급치산 낙조’를 지나 2㎞쯤 북상하면 바닷가에 설치된 세방낙조 전망지가 나온다. 그곳에 서니 다도해와 20여개의 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기상청이 한반도 최남단 제일의 낙조 전망지로 선정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닷가 전망지에서 동석산 쪽으로 200~300m 목조 계단 길을 올라가면 2층으로 된 세방낙조 전망대가 나온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좋을 것 같아 올라갔으나 바다와는 거리가 먼 것 같아 다시 바닷가 쪽 전망지로 내려와 해가 저무는 것을 기다렸다. 저녁해가 어스름하자 사람들이 하나둘 전망지로 모여들어 어느덧 20여명으로 늘어났다. 저녁 7시가 되니 해가 바다 속으로 빠져들 준비를 한다. 섬과 섬 사이로 빨려드는 붉고 노란 색이 합쳐진 노을 특유의 색을 기대했으나 눈앞에 펼쳐진 일몰 모습은 미세먼지 때문인지 다소 흐릿했다.

멋진 세방낙조 (출처 진도군청)

 

멋진 낙조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지는 이곳 말고도 주변에 더 있다. 세방낙조 전망대에서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타나는 큰애기봉 전망대다. 산꼭대기인데도 넓고 평탄한 그곳에서 섬들 사이로 넘어가는 환상적인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세방낙조 전망지에서 2㎞ 남쪽에 위치한 급치산 전망대도 고도가 높아 다도해 경관과 낙조 감상에 좋은 곳이다. 7시 13분 마침내 해가 꼴까닥 서해 바다 너머로 넘어가는 것을 보고 진도를 떠나 서울로 향하는 자동차 엑셀에 힘을 주었다.

진도개테마센터는 어른용이라기보다는 아이들용이다. 그래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어수선하다. 무엇보다 진돗개 분양에 초점을 맞춘 민간 장소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동행 친구가 진돗개 분양을 물어보니 센터를 지키던 분이 자신이 기르고 있는 진돗개를 보여주겠다며 센터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계곡 옆 자신의 축사로 안내한다. 수십마리의 진돗개가 자신의 진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는 자기들을 어서 데려가달라고 흥분된 상태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관매도와 여귀산, 다음 진도 방문 때 필히 갈곳 1~2위 순위

여귀산은 진도군이 첨찰산과 더불어 진도의 2대 명산으로 꼽는 산이다. 정상은 돌출한 암봉이지만 양쪽 능선은 부드러운 산세를 띤다. 작고 아담해 쉬엄쉬엄 걸어도 서너 시간이면 산행이 끝난다. 정상에 오르면 주변의 산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일출과 석양도 유명하다.

진도 팽목항에서 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관매도 역시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다. 약 3㎞의 해수욕장 뒤편에 울창한 숲이 병풍처럼 둘려져있다. 50∼100년생의 아름드리 해송이 빼곡하다. 해변의 송림 중에는 국내 최대 규모다. 백사장의 경사는 느릿하고 파도는 잔잔하며 모래는 밀가루처럼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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