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호남선 완전 개통

1914년 1월 11일, 3년8개월 동안 구간별로 시차를 두고 개통해온 대전~목포 간 철도노선 가운데 전북 정읍과 광주 송정리를 잇는 9번째 철도구간이 마지막으로 완공됨으로써 ‘호남선’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이어졌다. 경부·경의선이 정치·군사적인 목적으로 부설된 것과 달리 호남선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농수산물을 타지역으로 연결해주는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부설됐다.

철도부설이 처음 논의된 것은 1896년 9월 프랑스의 한 회사가 경성~목포 간 경목선(京木線) 부설권을 요구하면서였지만 대한제국은 1898년 직접 호남선 부설을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경목철도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넉넉치 않은 자금사정으로 1904년 6월 부설권이 민간업자에게 넘어가고 철도 이름도 ‘경목철도’에서 ‘호남철도’로 바뀌었다. 호남선은 처음부터 한국인 스스로가 추진했다는 점에서 다른 철도와 차별성을 가졌지만, 일본 통감부는 이마저도 일방적으로 12만9000원을 주고 부설권을 빼앗았다.

통감부가 호남선 착공을 뒤로 하고 경원선(용산~원산)을 먼저 착공하려 하자 발끈한 목포지역 실업가들이 ‘호남철도 급설(急設)운동’을 벌이며 조기착공을 건의해 통감부가 당초의 결정을 뒤엎고 동시착공(1910년 5월)하도록 성사시켰다. 시작은 같았지만 경원선은 호남선보다 8개월 늦은 1914년 8월 개통됐다. 호남선은 대중가요에도 자주 등장, 국민들과 애환을 같이했다. 국민가요로까지 발전한 김수희의 ‘남행열차’와 1950년대 최고 히트곡 가운데 하나인 ‘비 내리는 호남선’이 대표곡이다. ‘비 내리는…’은 1956년 대통령선거를 불과 열흘 앞두고 숨진 신익희의 미망인이 슬픔을 이기지 못해 노랫말을 지었다는 소문으로 작곡가 박춘석, 작사가 손로원, 가수 손인호씨 등이 줄줄이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는 얘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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