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정부, 두발·교복 자율화 발표

그 시절, 등교길의 남학교 교문 앞을 지키고 선 교사들 손에는 의례히 바리캉(이발기계)과 회초리가 쥐어져 있었다. 학생의 머리가 조금이라도 길다 싶으면 어김없이 학생을 불러 바리캉으로 머리위에 고속도로를 냈다. 교복에 이름표가 붙어있지 않은 학생, 교복의 호크를 잠그지 않은 학생, 전날 하교길에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교모를 미처 쓰지 않고 등교하던 학생들도 교사의 호통과 얼차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1982년 1월 2일 정부의 두발․교복 자율화 발표와 함께 한때의 추억이 되었다.

정부는 우리의 생활수준이 선진국의 추세를 참작할 정도가 되고,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경직된 사회분위기를 해소해야 한다는 점을 자율화의 배경으로 내세웠다. 일제 강점기의 잔재를 없애자는 각계 의견도 반영했다. 자율화 발표에 따라 머리모양은 1982년 신학기부터 바로 자유롭게 되었으나 여학생은 퍼머나 염색 등 인공적으로 머리모양을 가꾸는 것은 금지되었으며, 남학생은 머리길이가 귀를 덮지 못하도록 했다.

교복자율화는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한 해 늦은 1983년부터 시행되었다. 오랫동안의 군국주의 잔재가 사라지면서 일시적으로 부작용이 없지는 않았으나 분명했던 것은 통금해제와 교복․두발 자유화로 획일적이던 사회가 다양화 사회로, 규제된 사고가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대전환을 이뤘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후 원색의 물결이 학교를 휩쓸고 유명 메이커의 운동화가 불티나게 팔렸다. 바야흐로 ‘까까머리 남학생, 단말머리 여학생’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과거 프로이센(독일)이 비상시 학생들을 전장으로 투입하기 위해 군복과 비슷하게 만든 데서 유래했다는 검정색 교복과 금장단추며 호크도 없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교복의 생명력은 강했다. 자율화 2~3년이 흐른 후부터 교복을 착용하고 두발을 제한하려는 학교가 늘어나자 정부는 1986년 2학기부터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교복과 자유복 중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했다. 1990년 8월에는 “교복 착용을 적극 권장하라”는 공식 지시까지 내려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복이 부활했다. 자율화 이후 자녀들이 원하는 활동복을 구입하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학부모들의 반발, 교외생활지도의 어려움과 탈선행위의 증가에 대한 교사들의 우려를 반영한 결과였다. 다만 예전의 시커먼 교복이 아니라 산뜻한 색상과 현대적 디자인의 교복으로 바꿔 학생들로부터 불만을 사지는 않았다. 그러나 두발 강제 단속에 대해서만은 반발하는 학생들이 많아 2005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두발 제한과 단속이 인권침해라며 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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