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샤를르 드골, 프랑스 대통령에 선출

1950년대 프랑스는 군소정당이 난립하고 단명 내각이 부침하는 취약한 내각제 나라였다. 드골은 한탄했다. “프랑스에는 위기가 와야 한다. 그것말고는 265가지의 치즈맛을 자랑하는 이 나라를 단결시킬 도리가 없다.” 예측대로 프랑스에 위기가 찾아왔다. 알제리 사태였다. 67세 드골이 12년 만에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알제리 사태가 야기한 군부의 불만을 무마하고 분열된 나라를 추스려달라는 국민들의 공감대가 작용한 때문이었다. 1958년 6월 1일, 드골의 독재자 성격을 우려한 적지않은 지식인·시민들이 취임을 반대하는 가운데 4공화국의 마지막 총리로 선출된 드골은 곧 헌법개정에 착수했다. 그리고 9월 28일, 강력한 정권을 목적으로 한 신헌법이 국민 80%의 찬성을 얻음으로써 5공화국이 출범됐다. 신헌법은 임기 7년의 대통령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의회의 힘을 약화시켰다.

12월 21일 5공화국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 드골은 그에게 주어진 강력한 권한을 무기로 알제리 사태에 대처했다. 알제리에 대한 드골의 초기 구상은 ‘프랑스령 알제리’를 계속 유지해나가는 것이었으나 많은 국가들이 반대하고 프랑스 국내 여론도 점차 부정적으로 변해가자 드골은 알제리를 독립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최대 위기였던 1961년 4월,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이 반란을 일으켜 상황이 다급하게 전개되자 드골은 군복차림으로 TV에 나타났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란군을 진압할 것이라는 그의 경고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반란군은 내부분열을 일으켜 이틀뒤 스스로 소멸했다.

드골은 안정된 정국을 바탕으로 초고속열차 TGV, 핵발전소, 콩코드기 계획을 입안했고, 화폐개혁 등 경제부흥정책을 구상·실천했다. 지나친 권한 강화로 독재자란 평을 듣기도 했지만 바야흐로 프랑스에는 새로운 희망이 싹텄다. 드골은 정치적 입지가 흔들릴 때마다 국민투표로 비판세력을 잠재웠으나 종국에는 그 자신이 국민투표로 물러나는 자충수를 두기도 했다. 지방행정 개혁과 상원 개편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국민이 국민투표로 부결시킨다면 이는 곧 “나에 대한 불신”이라는 극단적인 선언을 공표한 것이 불씨가 됐다. 결국 국민이 법안을 부결시키자 1969년 4월 27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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