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사형집행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간 일본의 A급 전범 7명이 1948년 12월 23일 도쿄 스가모구치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도조 히데키, 히로타 고키, 도히하라 겐지, 이타가키 세이시로, 기무라 헤이타로, 쓰이 이와네, 무토 아키라. 단죄된 7명의 이름들이다. 자살이 실패로 끝나 교수대에 오른 대표적인 전범 도조 히데키는 처형 직전까지도 참회하지 않고 “욕망의 이승을 오늘 하직하고 미타(彌陀) 곁으로 가는 기쁨이여”라는 유언시를 남겼다. “살아서 포로가 되어 욕을 당하지 말라”며 젊은이들을 사지로 보내놓고는 정작 자신은 살아서 욕을 보았으니 도조의 운명도 얄궂었다.

이들에게 교수형을 선고한 극동국제군사재판(일명 도쿄재판)은 독일의 전범을 심판한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과 함께 전후 전범 처리를 위해 설치됐다. 1946년 5월 3일 도쿄의 옛 육사 강당에서 처음 열린 도쿄재판은 2년 반 동안의 심리 끝에 1948년 11월 12일, A급 전범자 25명 전원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했다. 웹 재판장은 7명에게 “데쓰 바이 행잉!”(교수형)을 선고했고, 16명에게는 종신형, 2명에게는 유기징역을 선고했다. A급 전범은 원래 28명이었으나 이중 2명이 재판도중 사망하고, 1명이 정신착란을 일으켜 제외됐다.

일본의 최고통수권자로 전쟁을 이끌었던 히로히토 천황을 배제함으로써 재판이 오히려 면죄부만 씌워준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히로히토는 냉전시대의 전략적 가치를 우선한 미국의 배려로 ‘신(神)’에서 ‘인간’으로 격하돼 천수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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