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美 보스턴차(茶) 사건

1773년 12월 16일 밤, 인디언으로 가장한 150여 명의 괴한들이 보스턴 항구에 정박 중인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의 무역선 3척을 급습하고는 배에 실려있는 324상자의 인도산(産) 차(茶)를 바닷 속에 내던졌다. ‘보스턴 차(茶)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현미경으로 보면 영국의 차 조례에 반발한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의 우발적인 소행이었지만 ‘역사’라는 망원경으로 보면 혁명을 향한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런대로 순탄했던 영국과 아메리카 식민지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7년 전쟁으로 고갈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영국이 식민지 미국에 관세를 강화하고, 그동안 묵인해주던 밀무역을 단속하면서였다. 설탕법(1764년), 인지세법(1765년), 타운센드법(1767년) 등 세입을 확대하기 위한 악법들이 속속 신설됐다. 식민지인들은 “대의(代議)없이 과세없다”며 반발했지만 영국은 고삐를 더욱 조여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차 조례가 또 제정됐다. 낮은 관세의 차수입 독점권을 주어 파산지경에 이른 동인도회사를 회생시킬 목적이었지만, 식민지인들 입장에서는 울고싶은 사람에게 뺨을 때리는 격이 됐다. 더구나 3년 전 영국 주둔군과 보스턴 시민 사이의 충돌로 4명의 시민이 숨진 터였다. 차 사건이 일어나자 영국은 보스턴항을 봉쇄하고 메사추세츠주의 자치선거를 금지하는 등 강경책을 썼지만 되레 반발만 키웠다. 1774년 9월, 50명의 식민지 대표가 필라델피아에 모여 제1차 대륙회의를 갖고, 급기야 1775년 4월 보스턴 교외에서 영국군과 식민지 민병대가 무력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메리카 혁명의 불길이 타오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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