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세계적인 프로레슬러’ 역도산, 야쿠자 간의 싸움에 휘말려 칼 맞고 사망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프로 레슬러 역도산의 일본 이름은 리키도상이고 본명은 김신락이다. 함경도에서 태어나 23세 때인 1946년 일본으로 건너가 스모선수로 세키와케까지 올랐으나, 일본인이 아니면 최고자리인 요코즈나가 될 수 없다는 스모계 규정에 반발, 1950년 9월 스모계를 떠났다. 페디스토마까지 걸려 건설회사 샐러리맨으로 일하던 중 주일 미군 위문차 방일한 미국 프로레슬러의 눈에 띄어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레슬러의 길을 걸었다. 미국에서 프로레슬러로서 혹독한 수련을 받고 200여 회나 시합을 벌이며 국제적인 감각을 쌓은 뒤 프로레슬링의 흥행 가능성을 내다보고 전미레슬링협회(NWA) 프로모터 자격을 땄다. NWA 소속레슬러의 일본 흥행권을 손에 쥔 것이다.

1953년 2월 19일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프로레슬링 국제시합이 도쿄 구라마에 국기관에서 열렸다. 경기장 앞은 몰려든 인파들로 큰 혼란을 빚었다. 일본 대표로 역도산이 출전한데다 당시 한창 인기를 모으고 있던 세계태그챔피언 샤프형제가 출전했기 때문이다. 역전광장 등 220여 곳에 설치된 옥외TV 앞에는 중계를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관중들은 역도산의 특기인 ‘가라데 촙(당수)’으로 거구의 서양인을 무너뜨리는 장면에 열광했다. 일본이 2차대전 패전국으로 절망에 몸부림치던 때였다.

프로레슬링 붐은 막 싹트고 있던 TV보급율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일본 전역을 들끓게 했다. 적자에 허덕이던 일본 N-TV가 프로레슬링 독점중계로 흑자로 돌아설 정도였다. 역도산은 사업가로도 성공, 한때는 일본 100대 자산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으나 1963년 12월 8일 뜻하지 않게 야쿠자간의 싸움에 휘말려 칼을 맞고 몇 차례 수술을 받는 도중 마취 잘못으로 12월 15일, 서른아홉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