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세계사의 물줄기 바꿔놓은 중국의 서안사변

1936년 12월 12일, 중국의 운명은 물론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시안사변(西安事變)’이 중국 시안의 화칭츠(華淸池)에서 일어났다. 시안의 옛 이름은 장안(長安)이고 화칭츠는 당(唐)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놀음을 일삼던 온천지역이다. 1년 간의 대장정을 거쳐 거의 궤멸된 상태로 연안에 도착해 한숨 돌리고 있는 마오쩌둥의 홍군(공산당군)을 뿌리뽑기 위해 장제스(蔣介石)가 장쉐량(張學良)의 근거지 시안을 찾으면서 역사는 반전을 시작한다.

장쉐량은 한때 만주지역을 호령했던 동북군 군벌 장쭤린(張作霖)의 아들로, 젊어서는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지만 일본군이 아버지가 탄 열차를 폭파시켜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가자 뒤늦게 대일 항전에 뛰어든 사람이다. 그는 평소 중국을 통일할 인물은 장제스 밖에 없다고 믿어온 영락없는 장제스 사람이었지만 일본군이 기세등등하게 중국 땅을 잠식해 들어와도 홍군 토벌만을 고집하는 그 무렵의 장제스는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미 공산당이 국공 내전을 중단하고 항일투쟁에 함께 나서자며 국민당 정부에 제안해놓은 상태였고, 여론도 국민당 정부에 비판적이었으나 장제스 만은 “일본은 피부병이고 공산당은 심장병”이라며 홍군토벌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결국 장쉐량은 17로군 사령관 양후청(楊虎城)과 함께 시안을 찾은 장제스를 감금하고 내전중단과 항일투쟁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8개 조항을 전국에 공표했다. 장제스는 시안을 찾은 공산당의 저우언라이와 담판을 한뒤 장쉐량의 요구를 수락하고나서야 12월 25일 난징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후 장제스는 공산당을 합법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국공 간의 단결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제2차 국·공합작을 체결함으로써 항일투쟁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홍군은 이 틈을 이용해 세력을 확대한 뒤 장제스를 역사의 중앙무대에서 밀쳐냈다. 장쉐량은 장제스를 전송하러 나온 시안비행장에서 갑자기 “내가 모시고 가겠다”며 동행을 자청, 1990년까지 대만에서 연금생활을 하다가 2001년 10월 미국에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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