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홍수환 4전 5기 승… 한국 프로복싱 첫 2체급 석권

1977년 11월 27일 오전 11시40분(한국시간), 신설된 WBA 주니어페더급 챔피언 결정전을 치르기 위해 파나마로 날아간 홍수환 선수가 파나마시티 뉴파나마체육관 링 한켠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상대는 ‘지옥에서 온 악마’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11전 11KO승을 자랑하는 파나마의 신예복서 헥토르 카라스키야였다. 게다가 28세였던 홍수환에 비해 11살이나 어린 17살이었다.

1974년 7월 3일 남아공 더반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15회 판정승으로 이기고 벤텀급 챔피언 자리에 올라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로 장안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홍수환으로서는 이날 경기에서 승리하면 한국 프로복싱 사상 최초로 2체급을 석권하고 해외원정 타이틀전 첫 승리자로 기록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1회 난타전이 끝나고 2회가 시작되자 홍수환은 강펀치가 실린 카라스키야의 무차별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2번, 3번 거푸 4번이나 쓰러졌지만 ‘근성의 복서’ 홍수환은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경기가 끝나고 홍수환이 말했듯 4번째 다운은 사실 슬립다운이라 바로 일어설 수 있었지만 그는 금쪽같은 8초를 쉬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3회 공이 울리자마자 홍수환은 카라스키야를 로프쪽으로 몰아 양훅과 어퍼컷으로 혼을 빼놓더니 커버없이 로프에 기댄 그의 오른쪽 옆구리에 레프트훅을 작렬시켰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넘어지고 있는 카라스키야의 턱에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3회 48초. 그것으로 끝이었다. 프로복싱사상 단 한차례도 없었던 ‘4전 5기’의 신화는 이렇게 이뤄졌다.

열광하던 2만여 파나마 관중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홍수환은 중계반과의 인터뷰에서 예의 입심을 또 한 번 과시했다. “어머니 정말 대한국민 만세입니다.” 이날 홍수환의 승리에는 운도 따랐다. 당시 WBA의 일반적인 경기준칙은 ‘한 회에 한 선수가 3번 다운되면 무조건 KO패’였는데 경기 전 카라스키야 측이 몇 차례 다운되더라도 선수가 싸울 의사만 보이면 경기를 속행하자고 규정을 바꿨기 때문이다. 이날 한국의 방송은 흥분의 순간을 하루종일 재방송, 장장 27회나 방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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