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노벨문학상 수상한 美 극작가 유진 오닐 사망

1953년 11월 27일 세계적인 미국의 극작가 유진 오닐이 미국 보스턴의 셀톤호텔에서 불행했던 말년을 마감하며 내뱉듯 말했다. “제기랄, 호텔에서 태어나 호텔에서 죽다니…” 그의 말마따나 그는 유랑극단 배우였던 아버지를 둔 덕에 뉴욕의 호텔에서 태어나 호텔방, 열차, 무대 뒤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야 했다. 말년도 깊은 좌절감 속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는 세월이었다. 10여 년 동안 글을 쓰지못했던 무력감도 그를 괴롭혔지만 세 번째 부인의 학대와 세 자녀의 온전치 않은 생활도 그의 비극적 인생살이에 끼어들었다. 40세에 자살한 장남과 정서적으로 불안했던 차남, 더구나 막내딸은 오닐과 동년배였던 찰리 채플린과 결혼해 그를 분노케했다. 이 일로 그는 딸과 부녀관계를 끊었다.

오닐은 미국의 아일랜드계 집안에서 태어나 1907년 프린스턴 대학을 1년 만에 그만두고 그가 훗날 “진정한 교육이었다”고 말한 ‘인생체험’을 시작했다. 이때 이후 6년 간은 죽음과 마주하며 살았던 기간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 리버풀(영국), 뉴욕 등지를 떠돌며 선창에서 부랑자 생활을 했고 술독에 빠져 살다시피 했으며 자살을 기도했다. 결국 1912년 폐병에 걸려 요양하던 중 극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때부터 손이 마비돼 사실상 집필을 중단할 때까지 그는 63편의 작품을 세상에 토해내며 단순한 오락거리에 불과했던 성인 연극을 수준높은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 사이 퓰리처상을 4번이나 받고 미국 극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1936년)하며 미국 최고의 극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오닐의 희곡은 주로 자신의 가족관계가 빚은 고통스러운 결과에서 소재를 찾았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서로에게 고통을 주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오닐을 사랑했지만 그를 타락시키고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삶을 마감한 형, 그리고 고뇌하는 자신이 주요 소재였다. 첫 장편극 ‘느릅나무 그늘 밑의 욕망’, 사후에 공연된 ‘밤으로의 긴 여로’는 그가 왜 20세기 미국 최고의 극작가인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작품이지만 이 작품에서도 그는 개인적인 비극을 고통스럽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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