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일본,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설립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동청(東淸) 철도 구간 중 남쪽 지역 즉 다롄(大連)에서부터 창춘(長春)까지의 철도구간을 넘겨받았다. 이 철도관리를 위해 설립된 것이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즉 ‘만철(滿鐵)’이다. 1906년 11월 26일 일본 정부가 자본금 2억 엔 가운데 반을 출자한 반관반민 회사 ‘만철’이 도쿄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초대 총재에는 대만 총독부 민정장관인 고토 신페이가 선출됐다. 고토는 다롄항을 건설하고, 푸순(撫順)탄광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 이후 전개될 ‘만철 왕국’의 토대를 마련했다.

1907년 영업을 시작한 만철은 안산제철소, 다롄기계제작소 등 대형계열사를 설립하고 만주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지선을 만들어 만주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함으로써 만철을 ‘아시아 대륙 침략의 첨병’으로 발전시켰다. 전성기 때 종업원이 4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커진 만철의 성장 배경에는 당시 일본 최고의 두뇌집단으로 구성된 여러 조사·연구기관의 역할이 컸다. 그중 하나로 1907년 4월 설치된 조사부는 만철 성장의 열쇠였고 만철과 관동군을 잇는 연결고리였다.

조사부는 만주사변 발발 이듬해인 1932년 ‘만철 경제조사회’로 명칭을 바꾸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만주사변 후 만철은 관동군의 손과 발이 됐고, 조사부는 두뇌가 됐다. 경제조사회가 추진한 석유·석탄·철강·화학산업에 대한 관료통제 사상은 2차대전 후 관료 주도경제로 고도성장을 일군 일본의 독자적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철도산업에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 1910년부터는 시베리아 철도를 경유해 유럽까지 가는 국제열차를 운행했고, 1934년에는 다롄과 창춘 사이 700㎞를 시속 100㎞로 달리는 초특급열차 ‘아시아호’를 선보여 일본의 위상을 높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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