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日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 할복자살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하고 ‘금색’ ‘금각사’ 등 수작을 잇따라 발표해 ‘일본적 미의식에 바탕한 전후최대의 작가’라는 평을 들었던 미시마 유키오는 삶 자체를 최고의 예술로 여기는 철두철미한 탐미주의적 작가였다. 그는 국화와 일본도를 일본정신의 핵으로 파악하고 ‘무사도’를 일본 정신의 원형으로 여겨 자신의 사조직 ‘다테노카이(楯の會)’ 회원들과 함께 자위대에서 군사정보원 훈련을 받고, 비밀리에 한국도 방문, 예비군 훈련을 참관하기도 했다.

1970년 11월 25일 오전10시40분 쯤, 다테노카이 회원 4명과 함께 도쿄 시내 육상자위대 총감부에 난입, 총감을 인질로 삼은 미시마가 2층 발코니에서 1000여 명의 자위대원들을 향해 궐기를 호소했다. “지금 일본 혼을 유지하는 것은 자위대 뿐이다.… 너희는 사무라이다. 자신을 부정하는 헌법을 왜 지키고 있단 말인가” 그러나 2차대전 후의 평화헌법을 뒤엎고 천황제를 실시하자는 그의 절규에 자위대원들이 냉소와 경멸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미시마는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자신의 배를 갈랐다. 45세였다. 다테노가이 대원이 다시 그의 목을 치는 전형적인 사무라이 방식에 일본 열도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TV는 특집 프로그램을 급히 편성하는 등 호들갑을 떨었다. 할복 후 미시마는 뚜렷한 구심점이 없던 일본 우익의 정신적 지주로 부상했고, 사건은 전후 일본 사회 저변에 흐르던 군국주의를 준동케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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