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정 말기,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방탕하기까지 한 라스푸틴이라는 요승이 있었다. 한 수도원에서 고행자 종파를 마나 성지순례를 하고 와서는 예언도 적중하고 환자까지 치료한다는 소문이 파다하자 딸만 넷을 둔 황후가 그를 불러들였다. 그의 예언대로 황후는 머지않아 황태자를 낳았고, 2년 뒤에는 혈우병을 앓는 황태자의 병까지 최면요법으로 고쳐주면서 황후의 믿음은 거의 맹목적인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 다행히도 황태자의 병은 적당한 때 도졌고, 그때마다 라스푸틴은 황태자의 병을 고쳐 황후의 환심을 샀다. 황후의 총애를 무기로 월권을 행사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니콜라이 2세 황제에 의해 추방되었으나 황후가 그를 다시 불러들일 정도였다.
라스푸틴의 영향력은 1915년에 이르러 정점에 달했다. 1차대전 발발로 황제가 전선으로 떠나면서 황후에게 맡겨진 권력은 사실상 라스푸틴의 차지였다. 무관의 황제였다. 라스푸틴의 농간으로 관리들이 쫓겨나고 무능한 인사가 그 자리를 채우자 로마노프 왕조에 대한 반감이 급속히 확산됐다. 신하들이 그를 암살하기로 작정하고 1916년 12월 30일 독약이 든 포도주와 케이크를 먹였으나 죽지 않았다. 총까지 쏘았으나 그래도 숨이 남아있자 암살자들은 그를 산 채로 네바강 얼음 구멍에다 처넣었다. 라스푸틴은 피살 전 “내가 살해되면 황제도 1년 이내에 죽는다”는 편지를 황제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 탓이었을까. 황제도 2년 뒤 볼셰비키에게 처형됐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원래는 성이 ‘라스푸틴’이었으나 그의 조부가 요승과 같은 성을 창피하게 생각해 ‘푸틴’으로 성을 바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