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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 부부 ④]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의 운명적 만남과 결혼, 그리고 소박한 삶

↑ 젊은 시절의 백건우와 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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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지

 

백건우, 세계적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후원 덕에 미국에 자리잡아

백건우(1946~ ) 부모는 음악을 좋아했다. 그가 서울에서 태어날 때 아버지는 음악에 조예가 깊은 영어교사였고 어머니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유치원 교사였다. 백건우는 8살 때 음악적 재주를 인정받고, 10살 때인 1956년 경남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해 그해 서울에서 독주회를 펼쳤다. 12살 때는 국립교향악단과 협연했다. 백건우가 미국에서 열리는 제1회 드미트리 미트로폴로스 국제콩쿠르에 나갈 기회를 얻은 것은 15살 때였다. 주한 미 대사관이 주관한 국내 콩쿠르에서 한국 대표로 선발된 것을 계기로 배재중을 졸업하고 한양공고 1학년 때이던 1961년 도미해 콩쿠르에 출전했다.

백건우는 세계에서 몰려온 실력파들과 경합을 벌여 특별상을 차지했다. 그러자 그의 재능을 인정한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고 뉴욕 아트 스쿨(1961년)과 줄리아드 음대(1965년)에 입학했다. 백건우는 25년 후에야 독지가의 비밀을 알았다. 당시 콩쿠르에서 그가 연습하는 모습을 우연히 지켜본 세계적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콩쿠르 주최 측에 “저 아이를 꼭 도와주라”고 부탁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된 것이다. 백건우는 1965년 런던의 나움버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1969년에는 세계적인 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하고, 미국 리벤트리트 콩쿠르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각종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백건우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26살이던 1972년이었다. 뉴욕에서 라벨의 피아노 독주곡 전곡을 연주하자 뉴욕타임스가 “대가도 해내지 못한 엄청난 연주”라며 극찬하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뉴욕 카네기홀에서 뉴욕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는 등 저명 연주자와의 협연이 잦아졌다. 그러나 백건우는 음악 공부가 덜 되었다는 생각으로 이름을 드러내기보다는 조용히 음악에 몰두하는 생활을 지속했다.

 

윤정희, 1960~70년대 문희, 남정임과 더불어 국내 영화계의 1세대 트로이카 형성

백건우가 미국에서 활약할 무렵, 부산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라며 조선대를 중퇴한 윤정희(1944~2023)가 1966년 1200대 1의 경쟁을 뚫고 강대진 감독의 영화 ‘청춘극장’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본명은 손미자였으나 오디션을 앞두고 윤정희라는 가명을 썼다. 1967년 1월 1일 국도극장에서 개봉된 ‘청춘극장’은 2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상대역은 신성일이었다. 윤정희는 이후 에도 신성일과 자주 호흡을 맞쳐 둘이서 주연을 맡은 영화가 99편이나 되었다. 윤정희는 ‘청춘극장’으로 그해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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